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일요일에 울린 종소리 1960년 2월 28일의 대구, 그리고 지금의 우리
경북공업고등학교 1학년 오준서
학교 종소리는 원래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평범한 약속이다. 그런데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대구 시내 고등학교들에 울려 퍼진 종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학기말 시험, 토끼 사냥, 임시 수업, 영화 관람 같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학생들을 일요일에 억지로 등교하게 만든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곧 있을 3.15 선거를 앞두고, 야당 후보의 대구 유세장에 학생들이 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자유당 정권의 꼼수였다. 평범해야 할 학교 종소리가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이 억지스러운 종소리에 그대로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가만히 교실에 앉아 부당한 지시를 따르는 대신, 그 일요일 등교 뒤에 숨겨진 독재 정권의 진짜 속셈을 정확히 짚어냈다. 이미 전날 밤부터 경북고, 대구고, 경북대사대부고 등의 학생 간부들은 몰래 모여 일요일 등교의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시위를 결의했다. 2월 28일 낮 12시 50분쯤, 경북고 운동장 조회단에 오른 학생 대표 이대우는 이렇게 결의문을 읽었다.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다.” 이 외침은 억지로 울린 일요일의 종소리를 덮어버렸고, 학생들 스스로 행동에 나서는 진짜 시작을 알렸다.
이윽고 800명이 넘는 경북고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갔다. 대구고 학생들도 뒤따랐고, 선생님들에게 막혀 못 나가던 경북대사대부고 학생들은 담장을 넘어 합류했다.
경북여고와 대구여고 학생들도 시위에 동참했다. 반월당과 중앙로를 지나 경북도청, 대구시청 등으로 향하며 학생들은 “학원의 자유를 달라”, “학생들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고 외쳤다.
경찰이 강제로 막고 많은 학생이 연행되었지만, 대구 한복판에서 터져 나온 고등학생들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부당한 통제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선 이들의 용기는 결국 마산 3·15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큰 불꽃이 되었다.
1960년 2월 28일, 일요일에 울린 거짓된 종소리를 멈춰 세운 건 다름 아닌 나와 같은 또래의 고등학생들이었다. 그날의 일은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준다. 누군가 부당하게 우리의 일상을 통제하려고 할 때,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왜 그래야 하냐"고 질문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도 결국 부당함에 맞서 목소리를 냈던 평범한 학생들 덕분이다. 옛날 대구의 학생들이 거짓된 종소리에 속지 않고 역사를 바꿨듯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주변의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옳은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