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동상(2·28원로자문위원장상)
차마 내딛지 못했던 한걸음에는
원화중학교 2학년 김시유
새벽 공기보다 차가운 경찰 제복의 은색 단추를 채우며, 나는 오늘 내가 막아서야 할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렸다. 1960년 2월 28일 새벽, 대구의 공기는 뼈를 에일 듯 차가웠다.
푸르스름한 새벽의 문틀이 덜커덕거리며 찬 바람을 들이밀었다. 식은 밥상을 정리하던 아내가
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낮게 물었다.
"오늘도 늦어요?"
"학생들 좀 막으라는 모양이야. 일요일인데 등교를 시켜놓고 연설회장에 못 가게 관리를
하라더군."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아이들이 일요일에 학교에 나와봤자, 어른들이 다그치면 투덜대며 책상
앞에 앉아 기말고사나 치다 집으로 돌아갈 터였다. 모자를 고쳐 쓰고 대문 밖을 나서는 나를 향해
아내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일요일인데도 애들을 학교로 부르다니, 참 세상 이상해요. 당신도 조심해서 다녀와요."
그놈. 고등학교 2학년인 내 아들 녀석 역시 오늘 학교에 가야 했다. 남들 앞에 서는 법도 없이 늘
순하고 납작하게 조용히 글이나 읽던 아이. 지난밤에도 녀석의 방 문틈으로 밤늦도록 불빛이 새어
나왔다. 몰래 열어본 방문 사이로, 녀석의 책상 위 종이 뭉치에는 며칠 전부터 같은 문장이 꾹꾹
눌러 적혀 있었다.
‘우리는 왜 침묵해야 하는가.’
아들이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저 녀석이 교실 구석에서 공부나 하다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랬다. 용감한 짓 따위보다 차라리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기에.
수성천변으로 가는 길목, 대구 시내의 아스팔트 위로 2월의 찬 바람이 강풍이 되어 휩쓸고
지나갔다. 길가의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비명을 지르듯 삐걱거렸다.
경찰서 앞에는 이미 어두운색 제복을 입은 대원들이 긴 진압봉을 차고 늘어서 있었다. 다들 멍한
눈으로 하얀 담배 연기만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형이었다. 하지만 대열을 무조건 봉쇄하라는 상부의 지시는 단호했다. 어른들이 쳐놓은 차가운
제복의 벽 너머로, 시내 전체가 숨을 죽인 듯 침묵하고 있었다.
-드르륵, 쾅!
일요일의 정적을 깨고 아스팔트 위로 쏟아져 나온 것은 수백, 수천 명의 푸른 교복들이었다.
경북고, 대구고, 사대부고…… 가방을 차가운 길바닥에 던져두고, 서로의 체온을 움켜쥐며
어깨동무를 한 채 단단히 팔짱을 끼는 아이들.
`학원의 자유를 달라!`
`정치를 학교에 불러들이지 말라!`
아이들의 앙다문 입술 사이로 흰 김이 거세게 터져 나왔다. 겨울 바람에 날리는 선전문 조각들
사이로, 아이들의 시선은 제복 입은 어른들의 가슴팍을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진압봉을 쥔 내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밀어붙여! 잡아서 끌어내!"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대원들이 진압봉을 올려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거친 고함과
비명이 거리를 채웠다. 거칠게 끌려나가는 아이들 속에서도 단단히 맞잡은 팔짱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 아수라장의 한복판, 줄 맨 앞자리에서 목이 터라 구호를 외치는 한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숨이 멎을 듯 심장이 얼어왔다.
내 아들이었다.
늘 집에서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시집만 읽던 그 녀석이, 차가운 바람 속에서 성한 곳 없이
여기저기 터진 채 수천명의 아이들 사이에 서 있었다. 피가 싹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녀석의 터진
입술과 흙먼지 덮인 옷자락을 보는 순간, 제 자식이 짓밟힐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달려가 녀석을 끌어내려 진압봉을 내던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퍽-
옆을 지나쳐 달려가던 동료 대원이 내 어깨를 거칠게 들이받고 지나갔다. 찢어질 듯 울리는
호루라기 소음 속에서 아들의 곁에 선 다른 아이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 아이 역시 누군가의
집에서 시를 읽고, 누군가의 밥상에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던 아들이었을 터였다. 비겁하게
살아남는 법만 가르쳐준 어른들 앞에서, 저 아이들은 제 몸을 던져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 순간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내 평생을 지탱해온 비겁함의 크기라는 사실이 서늘하게 뼈를 찔렀다.
아들의 떨리는 어깨, 함께 손을 꼭 쥐고 나를 노려보던 아이들, 사방에서 거칠게 죄어오는 제복의
벽 속에서도 팔짱을 놓지 않던 수많은 푸른 교복들.. 그 눈빛들이 나를 옥죄여왔다. 진압봉을
쥐었던 손끝이 얼어붙은 듯 볼품없이 떨렸다. 나는 차마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소음 한복판에서 갈 길을 잃고 아스팔트 위에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밤이 아주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문을 열자 싸늘한 정적이 집 안을 메우고 있었다. 현관
문턱을 넘어서의 아들의 옷자락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무릎 쪽엔 흙먼지와 핏자국이 가득했다.
김이 오르는 찌개 그릇을 내온 아내가 한마디를 던졌다.
"둘 다 오느라 고생했다. 밥 먹어라."
식탁 위엔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만 감돌았다. 아들은 찌개 김 너머로 고개를 묻은 채 묵묵히 밥을
삼켰다. 녀석이 올곧게 서 있던 그 거리가 식탁 위에 환영처럼 떠올랐지만, 나는 차마 다그치지도,
안위를 묻지도 못했다. 내가 알던 순하고 납작했던 아이는 식탁 어디에도 없었다. 식사를 마친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식사를 끝내고 머리를 짓누르던 무거운 경찰모를 벗어 식탁 옆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제복
소매 끝에서 덜렁거리던 은색 단추 하나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은색 단추는 식탁 밑 어두운 구석으로 천천히 굴러갔다.
담배를 태우려 대문 밖으로 나왔다. 2월의 밤바람이 시내의 아스팔트에서부터 불어와 볼을 차갑게
할퀴었다. 어두운 마당 구석, 아들이 던져둔 교복 가방과 그 틈새로 비어져 나온 구겨진 시집 위로
찬 서리가 희미하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었다. 실밥이 풀린 제복 소매 끝이 서늘하게 손끝에 닿았다. 바닥으로
구른 단추를 다시 주워 채우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대문 기둥에
기대어 지붕 너머의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담배 연기를 뿜어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