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동상(2·28원로자문위원장상)
라일락 향기 속에서 만난 별, 그리고 2·28의 봄
청라중학교 2학년 이승민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퍼지는 라일락 향기를 따라 걷다 보면, 대구의 오래된 근대골목과 마주하게
된다. 그 길 위에서 마당 한구석에 비스듬히 누워 세월을 견딘 200년 된 라일락 나무를 보았고,
형의 진지한 목소리를 통해 지하실에 묻힌 뜨거운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시간 내 마음속을
맴돌던 그날의 기억들이 역사 속 형, 누나들의 생생한 숨결로 다가온 것은, 최근 안소영 작가의
'시인 동주'라는 책을 읽으며 그 시절 선배들의 깊은 고민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을 때였다.
책 속의 윤동주 시인은 나라를 빼앗긴 절망적 상황에서 총칼을 들지 못하고 시를 쓰는 자신을
끊임없이 부끄러워했다. 어둠 속에서도 끝까지 연필을 쥐었던 시인의 아픈 마음앓이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대구의 역사와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문득 형의 손에 이끌려 가보았던 계성중학교 아담스관의 어둡고 좁은 지하 보일러실이 떠올랐다.
일제강점기 당시 나와 비슷한 나이였을 선배 학생들이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숨죽여 태극기를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장소였다. 컴컴한 지하실을 바라보던 그때의 정적 속에서,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치열하게 살아갔던 그 시절의 선배들 모습이 생생하게 겹쳐 보였다.
형의 설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6·25 전쟁 당시 수많은 계성중학교 학생들이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자원해 목숨을 걸고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는 아픈 역사도 들려주었다.
지금나와 같은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선배들이 교복을 입은 채 전장으로 향했다는 사실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조국을 위해 펜을 들고 고민했던 시인들처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선배들은 교복을
입은 채 진짜 총을 들고 전쟁터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조국의 위기 앞에
자신을 던졌던 그 시절 어린 선배들의 삶의 무게가 묵직하게 전해왔다.
사실 그날 들렀던 이상화 시인을 기리는 ‘라일락뜨락’은 처음에는 그저 어머니와 함께 흐드러지게
핀 꽃이 너무 예뻐서 잠시 쉬어가려던 곳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나니 마당
한구석에 마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200년 된 커다란 라일락
나무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그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버티느라 그렇게 기울어진 것만 같은
나무는, 이상화 시인이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느꼈던 슬픈 마음앓이부터 어린 학도병들의
뒷모습까지 모두 지켜보았을 역사의 증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눈물겨운 나무는 마침내 대구의 학생들이 이 땅의 거대한 민주주의를 깨운 위대한
봄날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어둠을 지나, 불의와 독재가 온 나라를
뒤덮었던 1960년 2월 28일.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백만 학도여, 정의를 위해 피를 흘리라"고
외치며 차가운 교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섰다. 나라를 빼앗겼던 어둡고 슬픈 시대에 숨죽여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내던 선배들의 용기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선으로
향했던 형들의 숭고한 정신도 모두 대구의 학생들이 불의 앞에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위대한
뿌리였던 셈이다. 그날 대구의 학생들이 흘린 정의로운 땀과 눈물은, 마침내 이 땅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푸른 봄을 깨우는 찬란한 신호탄이 되었다.
윤동주 시인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랐고, 이상화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며 가슴 아프게 되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구의 2·28 선배들은 자유와 정의를
외치며 온몸으로 그 봄을 완성해 냈다. 그분들이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진정한 '봄'이 찾아온
지금, 나는 평화롭게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자유를 누리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이
민주주의와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값진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 깨닫자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져
왔다.
사실 요즘의 나는 그저 공부가 싫고 친구들과 노는 것만이 즐거운 평범한 중학생이다. 때로는 계속
이렇게 철없이 지내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 골목길에서 만난
선배들의 발자취는 나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끝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인들과,
민주주의의 정의를 위해 거리에 섰던 대구의 선배들처럼, 나 또한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에 책임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제는 밤하늘의 별을 볼 때도, 길가에 피어난 꽃을 볼 때도 그 시절
선배들이 청춘을 바쳐 지켜내려 했던 평화와 민주주의의 무게를 기억할 것이다.
역사 앞에당당하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길 위에서 찾은
미래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