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동상(2·28원로자문위원장상)
시간의 무게
송악고등학교 1학년 백온유
시간이란 인간이 만든 가장 인위적인 개념이다. 수학적으로 우주의 방정식에서 제외되기에
불완전한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항상 부족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말하며 우리는
부족한 시간에 궁색하게 변명하곤 했다. 시간의 무게도 모른 체 말이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진로와 공부에 치일 때, 우리와 같이 학교에
들어오신 선생님 분이 계셨다. 선생님 고향인 대구에서 이번 학기에 전임으로 오셨다는 한국사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께서는 명언을 하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수업을 하시면서 가끔 시간은
금이니 효율적으로 쓰라며 우리의 가슴에 울림을 주려 노력하셨다. 선생님과 어느새 친해지고
여름방학이 다가올 때 즈음 선생님은 예습하겠다며 학생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꿋꿋이 수업을
하셨다. 방학이 가까워지면서 많은 선생님께서 자습 시간을 주시기에 나는 옛날이야기 듣는 듯한
기분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2.28 사건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셨고 평소
역사에 관심이 없던 우리의 머릿속에는 물음표만이 남겨질 뿐이었다. 고향이 대구이기에 항상
아버지께 듣고 자랐다며 잘됐다 싶으셨는지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해 주셨다.
선생님의 아버지께서는 경북 고등학교에 다니셨는데, 3월에 있을 기말고사 공부를 한창 하시던 중
갑작스러운 2월 27일에 임시 시험을 치른다는 소식에 놀라 급히 가방과 도시락을 챙기곤 학교로
가셨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선 영화 상영이나 토끼 사냥했을 뿐 시답잖은 이유로 등교를 시키자,
한 무리에서 유세장에 학생들의 출입을 막으려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교
시간이 되자 대구 시내에서 8명을 시작으로 학생들이 점점 모여 약 천 명이 벌이는 한국 최초의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선생님 아버지께서는 시위에 참여하여 이렇게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일에
함께 반발하셨다. 그러자 경찰이 나타나 총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한 질문이 나왔다.
“선생님 그 당시도 학생은 투표권이 없을 텐데 왜 굳이 학생들이 나서서 시위를 벌인 것에요?”
선생님은 질문이 날카로웠다며 그 친구를 칭찬하시곤 대답해 주셨다. “너희들 중에 일요일에 쉬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그걸 참고 학교에 나왔더니 학교에서 한다는 게 영화 보기라니
‘그 촛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겠다’라며 큰 꿈을 안고 자라나가는
사람들이 정치 놀음에 일체 관계할 리도 만무하고 학문 습득에 시달려 그런 시간적인 여유도 없을
텐데,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화가 날 만도 하지. 그래서 이번 일을 정치에 관계 없이 주위 사회에
자극 받지 않는 책 냄새, 땀 냄새 촛불 꺼멓게 앉은 순결한 이성으로서 우리의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밑바탕으로 하여 일장의 궐기한 거야”
선생님께서는 1960년 당시의 결의문을 인용하여 대답을 해주셨고 친구들도 곧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께서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선생님의 아버지는 경찰의 무력 진압에 집으로
돌아가셨지만, 며칠 동안 경찰은 학생들을 조사하고 학교 안팎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웃들은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 봐 입을 아꼈고, 아이를 둔 부모들은 서로의 안부만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의 아버지 역시 혹여 앞날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크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그날 거리에서 맞선 학생들의 용기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대구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외침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3·15의거를 거쳐
4·19혁명으로 이어졌고,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부당함에 맞서는 힘이 되었다. 선생님께선
다음 시간은 4.19 혁명 부분 진도를 나가겠다고 하시곤 수업을 마치셨다. 칠판엔 열정 가득히 담긴
그림이 모여 그날 뜨겁게 불타올랐던 현장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날 우리는 가슴에 한 신념이 전달되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라는 말씀이 와닿았다. 그저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날 그 학생들의 나이는 우리와 얼마나 차이가 났을까. 아니, 우리
또래의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그 시위를 벌였다. 우리가 쓰는 일요일은 그저 쉬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그날 그 학생들은 목청이 터져지게 외쳤고 경찰의 무력 진압에도 맞서는 사람도 있었다.
그 하루가, 시간이, 1분 1초라는 그날의 시간의 질이 우리와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지고 흐르고
있었다. 시간을 금보다 귀하게 여기며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 부족한 시간을 써서 민주화의 기틀을
만들었고 4.19 혁명으로 그 결과를 보여줬다.
시간을 금보다 귀하게 여긴 것은 단지 시간을 아껴 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내어놓았고, 그 하루는 결국 역사를 움직였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1분 1초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삶과 사회를 바꾸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그 안에 담기는 의미와 무게는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날 대구의 학생들이 보여준 시간의 무게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의 시간은 어떤 무게를 지니고 흐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