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백만 학도여
충남삼성고등학교 1학년 황민서
침묵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하지만 2월 28일, 대구의 학생들은 가장 위험한 용기를 택했다.
'그 촛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그들은 알았기 때문이다. 침묵은 언제나 큰 대가를 가장 늦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정의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그 날 교복 자락을 스쳐 지나간 용기는 잊혀져선 안된다.
우리 외할아버지 댁은 대구에 있다. 비록 멀기는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것을 꽤
좋아했다. 물론 갈 때마다 할아버지께서 손에 쥐어 주시는 사탕도 좋았지만, 내가 그곳을 좋아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할아버지 댁에는 오래된 사진과 각종 배지, 우표처럼 시간을 고스란히
품은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물건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빛바랜 세월 너머로
비치는 할아버지의 삶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던 작년 추석, 여느 때처럼 방 한구석을 뒤적이던
나는 낡은 나무 서랍 하나를 발견했다. 처음 보는 상자는 그동안의 세월을 보여주 듯 하얀 먼지가
쌓여있었다. 나는 먼지를 털어내고 그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누렇게 바랜 공책
한 권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나는 표지를 넘겼다. 오래된 종이 특유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고,
누렇게 바랜 종이는 또박또박 적힌 글씨들이 빼곡했다. 할아버지의 글씨체다. 중간 중간 낯선
한자가 섞여있었지만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날짜를 보니 1960년. 할아버지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무렵 쓰여진 일기였다. 일기에는 할아버지의 학창 시절, 어느 고등학생의 평범한
일상이 적혀있었다.
'할아버지의 학창 시절은, 그 당시 고등학생은 이런 모습이었구나.'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기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평범한 일상과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던 중,
문득 분위기가 달라지는 한 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1960년 2월 25일.
1960년. 낯설지 않은 연도였다. 하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의 글씨는
이전과 달랐다. 또박또박 정갈하던 글씨는 어느새 흐트러져 있었고, 종이가 움푹 패일 만큼 힘주어
눌러 쓴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급하게 적은 듯 획은 떨려 있었고, 몇몇 글자는 잉크가 번져
있었다. 아직 내용을 읽기도 전인데, 그 페이지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거운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글씨를 따라 한 줄, 두 줄 읽어 내려갈수록 나는 어느새 그 시절의 한 학생이 되어
있었다.일기를 읽는 것인지, 그날을 살아가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낡은 일기장은 더 이상
내 손에 없었고, 내 앞에는 소란스러운 교실이 펼쳐져 있었다.
사회의 어두운 분위기. 어른들의 표정은 무거웠고, 거리에는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며칠 뒤 대구 유세가 열린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래도 학교는 학생들의 활기와
풋풋함으로 가득했다. 교실은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어 보였다. 친구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었고, 창밖으로는 아직 차가운 겨울 바람이 운동장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선생님의 표정만은 무거웠다. 평소처럼 우리를 바라보면서도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했다. 잠시
뒤, 담임 선생님께서 조용히 입을 여셨다.
"예정된 시간표가 중학생 입시 관계로 일부 변경되어 28일은 일요일이지만 시험을 실시하겠으니
모두 불만 없이 따르도록 하라."
순간 교실이 술렁였다. 당초 3월 3일 시작한다고 공표되었던 학기말 시험 일정을 갑자기 변경하고,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등교하라니. 학생들은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앞당겨진 중간 고사는
핑계라는 것을.
'학생들이 유세장에 가지 못하게 하라.'
일요일 등교는 단순한 학교 방침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결정이였다. 나중에서야
경북고와 대구고를 비롯한 여러 학교가 같은 공지를 받았다. 학생들은 분노했다. 토끼 사냥과 단체
영화 관람이라니. 정말 터무니 없는 변명이었다.
이날 이후 학교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그리고 2월 27일 경북고,대구고,경대사대부고
학생들은 뜻을 모았다.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밤늦게까지 논의했고, 경북고와 대구고는 다음 날
반월당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했다. 그 자리에서 결의문과 격문이 작성되었고, 학생들은 다음 날을
준비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손에는 한 장의 격문이 전해졌다.
1960년 2월 28일. 정오가 가까워지자 학교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
평소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평소와 다른 결의가 서려있었다. 12시 50분 쯤 되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등교했고, 8백여 명에 이르는 전교생이 조회단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알아차린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나와 학생들을 분산시키려고 애썼다.우리는
오히려 서로의 어깨를 맞대며 더 가까이 섰다. 굳은 각오로 하나로 뭉친 학생들의 기세를 꺾을 순
없었다. 그 순간 누군가 단상 위로 뛰어올라 두루마리 결의문을 펼쳤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운동장을 가득 메우기에는 충분했다. 결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지고, 같은 마음으로 모인 수백 명의 학생들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오후 1시 쯤, 학생들은 교문을 나섰다.
"일요일 등교의 저의가 무엇이냐!", "학원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학원에 자유를 달라!"
는 구호가 대구 시내를 울렸다. 반월당을 지나 도청으로 향하는 길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춘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는 조용한 박수로
우리의 걸음을 응원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경찰이 우리를 막아섰다. 경찰들은 우리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다. 곤봉이 휘둘러지고 친구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누군가는 붙잡혀
끌려갔고, 누군가는 다친 친구를 부축하며 다시 일어섰다. 두려웠다. . 그렇게 이틀 간 대구 시내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뜨겁게 달궈졌다. 학교,학년,성별에 상관 없이 모두가 한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외쳤다 하지만 그날, 우리가 지키려 했던 것은 단지 일요일 하루가 아니었다. 학생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였다.
사실 일기를 읽은 직후의 나는 그것을 그저 불의에 맞서 싸웠던 학생들의 오래된 이야기 정도로만
여겼다. 역사의 한 장면을 읽은 것뿐이라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자 기억도 조금씩 희미해졌다.
그러나 다시 그날을 떠올리게 된 것은 역사 시간이었다. 교과서를 넘기던 중 '2·28 민주운동,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출발점'이라는 문장을 마주하는 순간, 머릿속에 오래전 읽었던 일기의 한
페이지가 선명하게 펼쳐졌다. 그날 운동장을 가득 메우던 학생들, 떨리는 목소리로 결의문을 읽던
학생 대표, 자유를 외치며 교문을 나서던 발걸음이 마치 내 기억인 것처럼 되살아났다. 그제야
깨달았다. 2월 28일의 외침은 단순한 학생 시위가 아니었다.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끝내 새벽은
온다는 믿음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첫 횃불을 들어 올린 용기였다. 그 불씨는 마산의 3·15의거를
거쳐 4·19 혁명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움직이는 시작이 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어른들조차 쉽게 입을 열지 못하던 시대에
그들은 자신의 미래보다 나라의 내일을 먼저 생각했다. 그해 추석, 다시 찾은 외할아버지 댁에서
나는 조심스레 그 일기 이야기를 꺼냈다.
"할아버지, 예전에 서랍에서 찾은 일기를 읽었어요."
할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으셨다.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걸 읽었구나."
"그때... 정말 무섭지 않으셨어요?"
할아버지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조용히 입을 여셨다.
"무서웠지.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거였단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은 어떤 역사책 보다 깊이 마음에 남았다.
이후 마무리는 작품의 주제를 한 번 더 묶어 주면 돼.
예전의 나는 역사를 시험을 위해 외우는 연도와 사건의 이름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역사는 교과서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청춘이었고 누군가의 용기였으며, 우리
가족의 기억이기도 하다는 것을. 17살의 할아버지와 지금의 17살인 내가, 66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한 권의 일기로 이어졌다. 빛바랜 일기장을 덮으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읽은
것은 오래된 종이 위의 글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첫 페이지, 오늘의 자유를 가능하게 만든
학생들의 뜨거운 겨울이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할 것이다. 1960년 2월 28일, 시대라는 쇠항아리에 기어코 금을 낸
대구의 학생들이 있었다고. 기꺼이 청춘을 바쳐 민주주의를 외친 이들이 있었다고. 그들은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 꿈꾸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