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맨 위 단추
심석고등학교 3년 황경석
매일 아침 교복 셔츠의 맨 위 단추를 채울 때면 손가락 끝에 작고 단단한 감촉이 닿는다. 단추를 구멍 안으로 밀어 넣고 구겨진 깃을 펴면 목둘레가 금세 팽팽해진다. 고개를 숙여 운동화 끈을 묶을 때는 단추가 턱밑을 꾹 누르기도 한다. 답답하지만 나는 늘 끝까지 잠갔다. 복도에서 생활지도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는 일도, 교실에서 튀는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는 일도 싫었기 때문이다. 단추를 모두 채우고 거울을 보면 조용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학생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나는 그 모습이 편했다.

7월의 어느 날, 학생회가 모인 다목적실에서도 나는 교복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있었다. 그날 안건은 여름철 복장 규정을 일부 바꾸는 일이었다. 회의를 앞두고 학생회는 여러 반을 돌며 의견을 받았다. 무더운 날에는 체육복 등교를 허용해 달라는 의견, 복장 단속의 기준을 좀 더 분명히 알려 달라는 의견이 많았다. 설문지를 나눠 주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이런 거 써 봐야 어차피 안 바뀌잖아.”

나는 그래도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학생회의 역할이라며 설문지를 책상 위에 놓았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말 무언가 바뀔지는 자신이 없었다. 다만 의견을 모아 회의에서 꼭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설문지 한 장의 맨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규칙을 지키기 싫은 게 아니라, 왜 그런 규칙인지 알고 싶어요.’

나는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러나 회의가 시작되자 설문 결과는 화면에 잠깐 나타났다가 곧 사라졌다. 선생님은 학교의 질서와 통일성을 설명한 뒤 기존 규정을 크게 바꾸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에어컨에서는 차갑고 마른 바람이 계속 흘러나왔다. 팔은 서늘했지만 셔츠 안쪽에는 땀이 차 있었다. 선생님이 참석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의견 있나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에어컨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학생들의 숨소리까지 삼키는 것 같았다. 내 옆에 앉은 친구가 책상 아래에서 내 팔을 살짝 건드렸다. 괜히 회의를 길게 만들지 말고 조용히 끝내자는 뜻이었다. 나도 고개를 숙였다. 회의록의 네모난 칸을 내려다보며 오른손으로 종이 모서리를 접었다 폈다 했다.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은 나였다. 그런데 막상 말해야 할 순간이 오자 입안이 바짝 말랐다. 내가 말한다고 정말 달라질까. 선생님들에게 까다로운 학생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다른 학생들이 괜한 일에 나선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수록 맨 위 단추와 빳빳한 옷깃이 목을 더 세게 누르는 듯했다. 손가락으로 옷깃을 살짝 당기는 순간, 며칠 전 2·28민주운동 자료에서 보았던 흑백사진이 떠올랐다.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사진이었다. 1960년 2월 28일은 일요일이었다. 대구의 학생들이 야당 부통령 후보의 유세장에 가지 못하도록 여러 고등학교에서 갑작스러운 등교 지시가 내려졌다. 조기 시험, 영화 관람, 토끼사냥처럼 학교마다 내세운 이유도 달랐다. 학생들은 부당한 일요 등교에 항의했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의문을 작성하고 거리로 나섰다.

처음 그 역사를 읽었을 때 내 눈에는 교문을 나선 모습만 들어왔다. 수많은 학생이 한꺼번에 거리를 달리는 장면은 언제나 용감하고 선명해 보였다. 나는 그들이 처음부터 겁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다목적실에 앉아 있으니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을 시간이 떠올랐다. 친구의 얼굴을 살피고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굳이 자신이 먼저 나서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던 시간 말이다. 그 학생들도 일요일 아침 교복을 입으며 망설였을 것이다. 교문을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떠올린 학생도 있었을 것이고, 다른 친구가 먼저 움직여 주기를 기다린 학생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특별해서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두려운 가운데서도 누군가는 먼저 부당하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친구들에게 다가갔으며, 누군가는 떨리는 다리로 교문을 나섰다.

물론 지금 내가 앉아 있는 회의실과 1960년의 대구 거리를 같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 앞에는 곤봉을 든 경찰도 없었고, 손을 들어 말한다고 끌려갈 일도 없었다. 내가 하려는 말은 학생들의의견을 한 번 더 들어 달라는 요청에 불과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부끄러웠다.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입을 다문 채, 역사 속 학생들의 용기만 칭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다음 안건으로 화면을 넘기려 했다. 나는 책상에 붙어 있던 오른쪽 팔꿈치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손 하나를 드는 짧은 동작인데도 팔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 가까이에서 들렸다. 고개를 들자 선생님과 학생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내게 모였다. 침을 한 번 삼켰다. 단추가 다시 턱밑을 눌렀다.

“학생들의 의견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규정을 무조건 없애자는 뜻은 아닙니다. 왜 필요한지 학생들도 설명을 듣고, 의견을 말할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설문에도 비슷한 의견이 많았습니다.”

준비했던 것보다 훨씬 짧은 말이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목소리도 조금 떨렸다. 회의실이 조용해지자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회의록 모서리를 세게 눌렀다. 잠시 뒤 선생님은 설문 결과를 좀 더 설명해 보라고 했다. 내가 인쇄해 온 종이를 펼치자 맞은편에 앉은 학생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체육복 등교가 가능한 날의 기준을 함께 정하자는 의견이었다. 다른 학생은 학생과 교사가 복장 규정을 같이 검토하는 자리를 만들자고 말했다. 아까까지 책상만 바라보던 학생들이 한 명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날 모든 규정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체육복 등교가 곧바로 허용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회의록 마지막에는 처음에 없었던 문장이 한 줄 추가되었다.

‘학생 의견을 다시 조사한 뒤 재논의한다.’

회의를 마치고 복도로 나오자 차갑고 메마른 다목적실의 공기와는 다른 바람이 불어왔다. 습하고 미지근한 여름 바람이었다. 시원하지도 상쾌하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 숨은 더 편하게 쉬어졌다. 나는 맨 위 단추를 풀었다.

내가 한 말은 66년 전 거리의 외침에 비하면 아주 작았다. 교문을 뛰쳐나간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바꾼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2·28민주운동 역시 학생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지 않고, 왜 그래야 하는지 묻는 데서 시작되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나는 다시 교복의 맨 위 단추를 채울 것이다. 학교의 모든 규칙이 부당한 것은 아니며, 함께 지키기로 한 약속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는 단추를 채우는 일과 입을 다무는 일을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으려한다.

교복의 단추는 다시 잠글 수 있어도, 한 번 시작된 질문까지 다시 잠글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