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시린 계절 너머의 따스함을 가장 먼저 믿은 당신께
김해수남고등학교 2학년 이지예
1960년 4월 19일 새벽 두 시 사십 분.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떠 보았지만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읍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어느덧 새벽
두 시를 넘겼고, 방 안에는 초침 소리만 또렷이 울렸읍니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더니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어 교복 자락만 살짝 흔들고 지나갑니다. 내일, 아니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저도 학우들과 함께 거리로 나설 것입니다. 어제 학교에서는 책을 펼쳐 놓고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읍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은 내일 일을 이야기하다 선생님께서
다가오시면 금세 흩어졌읍니다. 누구 하나 먼저 나서자고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마음은 이미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읍니다. 하교 무렵, 옆 반 친구 명훈이가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읍니다. "내일
보자." 늘 하던 인사였지만 어제만큼은 오래 마음에 남았읍니다. 내일도 그 인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조용히 저려 왔읍니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래도 이번만큼은 모른 척할 수 없었읍니다. 옳다고 믿는 일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 안방 문을 조용히 열어 보았읍니다. 아버지께서는 깊이 잠드셨고, 어머니께서는 제 방
불이 꺼지기만 기다리시다 그대로 잠드신 듯했읍니다. 잠들기 전 어머니께서 제게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귓가를 맴돕니다. “내일은 학교만 잘 다녀오너라." 그 말씀을 듣고 난 뒤 저는 거짓말도,
진실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읍니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았지만 교과서 대신 두 달 전 신문 속 2월
28일의 대구가 자꾸만 떠올랐읍니다. 신문에는 대구 학생들이 일요일 등교 지시를 받고도 교문을
나서 거리로 향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읍니다. 선거 유세장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려던
조치였다고 하였읍니다. 그때는 몰랐읍니다. 그 한 걸음이 두 달 뒤 제 용기가 될 줄은. 대구에는 가
본 적도 없고 여러분의 이름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오늘 밤만큼은 자꾸만 여러분이 떠오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도 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 분도 계셨읍니까.
혹시 부모님 방문 앞에서 한참을 서 계셨던 분도 계셨읍니까.
혹시 자신의 교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셨던 분도 계셨읍니까.
저는 이상하게도 그랬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려우면서도 나가지 않을 수는 없다는 마음.
아마 그것만큼은 우리 모두 같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디딘 그 한 걸음은 대구의 거리만을 향한
발걸음이 아니었읍니다. 그리고 그 걸음은 대구에서 멈추지 않았읍니다. 마산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서울의 저희에게까지 닿았읍니다. 저는 이제야 여러분의 마음을 조금씩 알 것 같지만
신문을 읽던 그날에는 미처 몰랐읍니다. 여러분이 교문을 나선 일이 두 달 뒤 제 발걸음까지
이끌게 될 줄은 말입니다. 어제 학교에서 같은 반 학급 회장인 석현이가 그러더군요. "내일 우리만
나가는 게 아니야." 처음에는 그 뜻을 몰랐지만, 이 편지를 쓰며 이제야 알 것 같읍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마음으로 거리로 나가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먼저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용기가 또
다른 용기를 불러 오늘의 저희에게까지 이어진 것이었읍니다. 오늘 거리에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걸을 것입니다. 서로의 이름은 몰라도 옳은 일을 외면할 수 없다는 마음만큼은 모두 같을
것이기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이토록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올해
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읍니다. 지금 이 편지를 왜 쓰기 시작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읍니다.
잠이 오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어서였는지는 저도
모르겠읍니다. 그렇지만 여러분께서 가장 먼저 걸어 주셨기에, 저희도 용기를 내어 같은 봄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사실만은 오래도록 잊지 않겠읍니다.
아아, 어느새 창밖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읍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하나둘 들려옵니다. 이제
저도 친구들과 한 약속을 지키러 가야겠읍니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끝날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언젠가 오늘의 봄을 떠올릴 날이 온다면, 저는 가장 먼저 두 달 먼저 교문을 나서 시린 거리로
나아가 따스함을 데리러 가던 학생들, 즉 여러분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거리를
함께 걸었다는 사실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읍니다. 부디 그날과 오늘의 발걸음이 대한민국의
사라지지 않는 봄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겠읍니다.
- 1960년 4월 19일 새벽녘 서울에서
고등학교 2학년 현기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