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2·28 공원에서 찾아낸 용기
경남밀양초등학교 5학년 김지연
가족들과 대구 동성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신나게 구경하다가, 우연히 도심 한가운데 있는
‘2·28기념중앙공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끌벅적한 거리 바로 옆에 이렇게 푸르고 조용한 공원이
숨어있다니 참 신기했다. 초록색 나무들 사이를 가만히 걷다가 분수대 광장 옆에서 커다란 돌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김윤식 시인의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이라는 시가 새겨진
비석이었다.
엄마와 함께 소리 내어 한 줄씩 읽어 보았다. ‘아무리 캄캄한 먹구름도 뜨거운 태양을 영원히 가릴
수는 없다.’ 시 구절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반드시
오니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1960년 2월 28일 그날, 어두운 세상 속에서 꽃처럼 피어난
언니와 오빠들을 응원하고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가슴을 울렸다.
처음에는 시 구절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내용을 가만히 이해하고 나니 가슴이 찌릿했다. 엄마는
이 비석에 대구 학생들의 숨겨진 진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하셨다. 그날은 원래 즐거운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야당 후보의 선거 유세장에 사람들이 못 가게 막으려 했다. 대구의
고등학생들에게 억지로 등교하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정치에 이용당할 순 없었다.
선배들은 "학원의 자유를 달라!"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리고 교문을 부수듯 박차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자, 나아가 4·19 혁명의 불꽃이 된 2·28 민주운동의시작이었다. 눈에 불을 켠 경찰들 앞에 용기 있게 맞선 주인공들이 나와 몇 살 차이도 안 나는
청소년들이었다니! ‘나라면 그 무서운 순간에 그럴 수 있었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공원에서 느낀 기분 좋은 떨림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았다.
새 학기가 되고, 우리 반 반장 선거 날이 왔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무척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편이다. 사람들 앞에 서면 손에 축축하게 땀이 찰 정도로 긴장을 많이 한다. 그런 내가 선거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 최고의 커다란 도전이었다.
칠판 앞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친구들과 나 사이에 놓인 선생님 교탁.
마치 60여 년 전 대구의 선배들이 마주했던 거대한 교문처럼 숨이 턱 막혔다. 당시에 어른들은
학생들이 못 나가게 교문에 자물쇠까지 채웠다고 한다. 지금 내 앞의 교탁이 꼭 그렇게 넘기 힘든
벽 같았다. 얼굴이 빨개지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내 마음에도 두려움이라는 캄캄한 먹구름이
잔뜩 낀 기분이었다. 바로 그때, 문득 대구 여행에서 본 비석의 글귀가 귓가에 맴돌았다.
‘옛날 대구의 언니, 오빠들은 무서운 경찰들과 굳게 닫힌 교문 앞에서도 당당하게 맞서 싸웠잖아.
겨우 이 작은 교탁 하나가 무서워서 내가 왜 이렇게 작아지는 거야! 시에서 읽은 것처럼 내
마음속에도 먹구름을 뚫고 나올 붉은 태양이 자라고 있다고!’
신기하게도 그 생각을 하자 머리가 맑아지며 떨리던 다리에 힘이 딱 들어갔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친구들 앞에 걸어 나갔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담긴 진심을 차분하게 말했다.
“여러분, 저는 우리 반 교실을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서로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는 ‘칭찬
게시판’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서로의 좋은 점을 먼저 찾아주면서, 우리 반 모두가 매일 아침을
행복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열심히 돕겠습니다!”
결과는 아쉽게도 반장 탈락.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소중한 표를 얻어 ‘부반장’으로 뽑혔다! 그날
행진하던 선배들에게 대구 시민들이 응원을 보냈던 것처럼, 우리 반 친구들도 힘차게 손뼉을
쳐주었다. 여기저기서 “와, 대단하다!” 하는 함성이 터졌다. 내가 용기 내어 낸 목소리에 친구들이
‘투표’라는 소중한 권리로 대답해 준 것이다. 교과서에서 낱말로만 보았던 '민주주의'가 우리 반
교실에서 반짝하고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대구 2·28 공원에 가보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수줍어하며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남들이
하는 걸 구경만 했을 것이다. 60여 년 전 2·28 민주운동의 선배들이 큰 용기를 내어 지켜준
민주주의의 가치 덕분에, 오늘날 내가 친구들 앞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고 표를 얻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비록 반장은 아니지만 상관없다. 이제 나는 우리 반의 작은 민주주의를 매일 가꾸어 나가는 멋진
부반장이니까 말이다. 그날의 선배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민주주의의 횃불을 밝혔던 것처럼, 나
또한 우리 반 친구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든든한 귀와 입이 될 것이다.
이제는 안다. 민주주의는 책에 적힌 어려운 숙제가 아니다. 두려움에 당당히 고개를 드는 '매일의
용기',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2·28의 언니 오빠들이 나에게 켜준 이 용기의 스위치를, 이제는
내가 우리 반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환하게 이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