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니는 2.28을 아나
사수중학교 2학년 김정민
"니는 2·28을 아나?"

할머니가 이 질문을 던지실 때마다 나는 늘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2·28은 시내버스 정류장 이름 같은 것이었다. 근처를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정작 그 안에 뭐가 있는지는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는, 그런 익숙하고도 낯선 이름.
이번 공모전 때문에 자료를 찾아보겠다고 하니, 할머니는 평소와 다르게 방바닥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나는 처음으로 휴대폰 녹음 버튼을 눌러놓고 그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그날 아침에 내가 뭘 신고 나갔는지도 기억난다. 검정 고무신이 다 해져가지고 엄지발가락이 삐죽 나와 있었어. 그거 신고 언니 손 붙잡고 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참, 그날 아침에 콩나물국밥을 먹었나, 그건 가물가물하네. 아무튼 담 너머로 애들이 막 뛰어나오더라. 일요일인데 등교를 시키가, 대통령 되실 분 연설 몬 보구로. 순사들이 오고 난리가 났는데, 나는 무섭다기보다 그냥 신기했다. 어른들도 겁내는 거를 저 어린 것들이 겁도 없이 소리를 지르니까. 니 할배는 그 얘기만 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 카더라. 근데 나는 사실 그 뒤로 어찌 됐는지는 잘 몰라. 언니가 집에 가자고 손을 확 잡아끌어서."

할머니는 거기서 말을 멈추고 창밖을 잠깐 보셨다. 뒷이야기를 모른다는 게, 오히려 그날이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걸 더 실감 나게 했다. 정리된 역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그냥 무섭고신기했던 하루였다는 것.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야당의 유세를 못 보게 하려고 억지로 등교시킨 학교 담을 넘어 거리로 나갔다. 누가 시킨 게 아니었다. 어른도, 선생님도 아닌 또래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그 걸음이 마산으로, 서울로 번져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할머니의 그 고무신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지금 내가 매일 걸어 다니는 그 동네 어딘가에서, 나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사람들이 정학과 구속을 각오하고 걸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뉴스에서 고등학교 야구 경기 영상을 봤다. 한 학교 학생들이 상대 팀을 향해 예전 지역 비하 논란에서 나온 구호를 응원가처럼 따라 외치는 장면이었다. 그 구호가 5·18을 조롱하는 데서 시작됐다는 걸 나는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댓글을 읽어보니 반응이 갈렸다. 누군가는 "몰라서 그랬겠지"라고 했고, 누군가는 "알고도 그랬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두 문장 사이에서 계속 왔다 갔다 했다. 몰랐다면, 그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다. 나도 얼마 전까지 2·28을 시내버스 정류장 이름 취급했으니까. 그런데 알고도 그랬다면 그건 타인의 비극을 고작 장난으로 소비해 버린 문제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나 역시 삶의 어디선가, 그게 잘못인 줄 알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혹은 무관심해서 그냥 넘어가 버린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턱 막히게 된다. 확실한 결론을 내리긴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마음을 묵직하게 누르는 게 있다. 몰랐든 알고 있었든 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에 섰던 이들의 두려움과 절박함이 너무나 무성의하게 가벼운 웃음거리로 치부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몰라도 살아가는 데 지장 없다고들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할머니의 고무신과 콩나물 국밥, 언니 손을 잡아끌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뭔가를 잊는다는 게, 혹은 알면서도 우습게 여긴다는 게 그렇게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할머니 질문에 고개만 끄덕이지 않는다. "어, 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진짜로 알아가는 중이다. 중앙로에 있는 2·28기념중앙공원을 이번엔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바퀴 돌아봤다. 할머니가 언니 손에 이끌려 뛰어갔을 그 골목이 어디쯤 이었을지 가늠해보면서.

2·28 민주운동은 66년 전에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그날 담을 넘었던 또래들처럼,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니는 아나?"라고 되물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몰라서 지나치는 사람도, 알고도 가볍게 여기는 사람도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러려면 오늘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