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질문받지 않는 자유
살레시오여자중학교 3학년 김나영
일요일에 학교를 나오라는 지시에는, 대개 이유가 있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시 교육 당국이 8개 고등학교에 갑작스러운 등교를 지시했을 때도 이유는 있었다. 다만 그 이유는 학생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시험을 본다고 했다. 토끼 사냥을 간다고 했다. 심지어 임시 수업이라는, 설명조차 되지 않는 말로 학생들을 교실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시내에서는 대통령 후보의 유세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유는 애초에 숨겨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말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 사실 앞에서 나는 우선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권력은 왜 늘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는가. 일요일 등교의 이유가 “학생을 정치로부터 차단하기 위함”이라고 정직하게 공지되었다면, 학생들은 순순히 따랐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권력은 늘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말한다. 시험이라는 이름으로,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질서라는 이름으로. 2.28민주운동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가르쳐주는 것은 이것이다. 명분이 정교할수록, 그 뒤에 숨은 의도는 더 노골적이라는 것.
경북고, 대구고, 경북여고를 비롯한 학생들은 그 명분을, 있는 그대로 삼키지는 않았다. 그들은 교문을 나섰고, 거리로 향했다. 이 장면을 우리는 흔히 ‘용기’라는 한 단어로 요약한다. 그러나 나는 이 요약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날의 학생들이 보여준 것은 낭만적인 용기가 아니라, 논리적인 반응이었다. 부당한 지시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숨겨져 있다면 의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 우리는 역사적 사건을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오히려 그것을 평범한 사람들과 무관한 일로 만들어지는 실수를 반복한다.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이 생긴다. 지금 우리는 그런 상식적 의심을 할 줄 아는가. 학교라는 공간,그리고 더 넓게는 우리가 속한 여러 공동체는 여전히 ‘질문하지 않는 태도’를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규칙은 대체로 설명 없이 주어지고, 우리는 그 이유를 캐묻기보다 순응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66년 전 학생들이 교문 밖에서 던진 질문, “왜 우리가 정치로부터 차단되어야 하는가”는 사실 지금도 유효한 질문이다. 다만 오늘의 질문은 형태를 바꾸어 던져야 한다. 우리는 왜 언론을, 있는 그대로 믿는가. 우리는 왜 다수의 의견을 검증 없이 받아들이는가. 우리는 왜 침묵을 안전으로 착각하는가.
2.28민주운동은 이후 4·19 혁명으로, 그리고 이 땅의 여러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평가받는다. 이 계보를 나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계보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들이 공통적으로 어떤 태도에서 출발했는가이다. 그것은 주어진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다시 말해 질문하는 태도였다. 우리는 이 태도를 민주주의의 결과물로만 배우지만, 사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전제 조건이다. 질문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아무리 형식적인 선거와 절차가 남아 있어도, 그것을 민주주의라 부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어떤가.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정보를 의심하고 검증하는 힘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뉴스를 읽으며, 우리는 스스로 질문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학교에서, 사회관계망에서, 우리는 여전히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말을 꺼내기를 주저한다. 2.28의 학생들이 마주했던 권력은 눈에 보이는 형태였지만,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압력은 훨씬 더 은밀하고 분산되어 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질문하는 태도는 그때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글을 자랑스러운 역사의 재현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대신 불편한 질문 하나를 남기고 싶다. 66년 전 학생들이 교문을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역사는 답을 주지 않는다. 역사는 다만 같은 질문을 세대마다 다시 던질 뿐이다. 1960년 2월, 교문을 나선 그들에게 아무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듯이, 지금 우리에게도 정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주어지는 것은 오직 하나, 침묵할 것인가 질문할 것인가 하는 선택뿐이다. 그리고 언젠간,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다음 세대의 질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