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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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고등학교 2학년 고건율
담임선생님이 반 채팅방에 공지를 올리면 나는 대개 몇 글자만 훑고 지나친다. "바랍니다"로 끝나는 건조한 종결 어미 하나, 그리고 시간. 오늘은 6교시 이후 체육대회 예선전이 있다는 공지였는데, 나는 그것도 끝까지 읽지 않고 알겠다는 이모티콘만 눌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공지 아래에는 예선전이 취소되고 대신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안전교육을 듣는다는 두 번째 줄이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반 친구 절반이 강당이 아니라 운동장으로 갔다.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냥 다들 웃으며 다시 강당으로 걸어갔을 뿐이다. 요즘 학교에서 안내문을 끝까지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중요한 맥락을 찾아내는 감각이 오히려 무뎌진 탓이다. 나는 이 일을 겪고 나서 2·28에 대한 자료를 다시 찾아보다가, 그해 2월의 학교 공지문이 지금 우리가 받는 것과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읽혔는지를 알게 됐다. 1960년 2월 28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런데도 대구의 고등학교들은 학생들에게 등교를 지시했다. 명목은 토끼사냥, 영화 관람, 임시 시험 같은 것들이었다. 그날 시내에서는 민주당 부통령 후보의 유세가 예정되어 있었고, 학생들이 그 자리에 모이는 걸 막으려는 지시였다는 것은 지금이야 교과서에도 나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공지문을 받은 열일곱, 열여덟 살들은 교과서 없이 그것을 알아냈다. 일요일에 학교를 나오라는 지시 하나, 그 숨은 의도를 파악해 낸 것이다. 경북고 학생들이 먼저 교문을 나섰고, 대구고와 경북여고, 대구여고, 사대부고 등이 뒤따랐다. 8개 학교, 수천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그날 도청 앞 도로를 메웠다.
나는 여기서 이상한 자격지심을 느꼈다. 그들은 정보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시대에, 공지문 한 장의 뒷면을 읽어냈다. 나는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두 번째 줄조차 읽지 않고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두 상황을 나란히 놓고 보니, 위화감을 감지하는 감각은 정보의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는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정보가 적을 때는 주어진 한 줄을 의심할 여유가 있었고, 정보가 많을 때는 의심할 시간조차 아까워서 결론부터 받아들이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하루에도 대여섯 개씩 오는 공지, 학원에서 오는 문자, 성적 관리 앱의 알림까지 합치면 나는 하루에 못해도 스무 개 넘는 안내문을 받는다. 그중 몇 개나 제대로 읽는지 세어본 적은 없지만, 세어보면 부끄러울 것 같다.
물론 두 상황을 똑같이 놓을 수는 없다. 1960년의 그 지시는 목숨과 자유를 건 사안이었고, 내가 놓친 공지는 강당과 운동장을 잘못 찾아간 정도의 문제다. 무게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비교를 계속 놓지 못했다. 왜냐하면 결국 둘 다 같은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지시나 안내를 받았을 때, 그것을 그대로 따르기 전에 한 번 멈춰 서서 "이게 왜 이런 방식으로 왔을까"를 물어보는 습관이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가 하는 질문. 그날 대구의 학생들이 특별히 용감했다기보다, 의심하는 습관이 몸에 붙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파국을 몸소 겪어낸 부모 세대로부터, 지시받은 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위험해진다는 수세적 본능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감각을 물려받지 못한 세대에 속한다. 대신 물려받은 건 알림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중요한 공지와 그렇지 않은 공지를 구분해서 골라 읽는 법, 필요한 것만 캡처해서 저장하는 법. 그런데 이 기술은 정작 "이 공지 자체가 이상하다"는 판단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형식을 처리하는 능력과 내용을 의심하는 능력은 서로 다른 근육이라는 걸, 나는 강당과 운동장 사이에서 뒤늦게 알았다.
2026년 지금, 대구에는 그날의 도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중앙로와 반월당 사이, 예전에는 도청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다른 건물이 서 있고, 그 수천 명의 학생들이 걸었던 길을 지금은 버스와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길은 남았고 지시문은 사라졌지만, 언젠가 다시 이상한 공지 한 장이 내려온다면, 나는 단순히 글자만 읽는 것을 넘어 그 행간과 맥락까지 알아채는 '두 번째 줄까지 제대로 읽는 사람'이고 싶다. 그 사소하지만 비판적인 습관 하나가, 결국 그해 2월의 학생들을 맹목적인 시대와 선명히 구별 지어 준 열쇠였음을 나는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