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대상
빵점짜리 답안지
양산인공지능고등학교 2학년 정현우
그 영웅들은 시험지를 만든 쪽을 도리어 채점했다.
1960년 2월 28일,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경북고와 대구고, 경북여고 등 대구의 여러 고등학교는
시험과 임시수업을 명목으로 학생들을 학교에 불러들였다. 명목은 제각각이었지만 이유는
하나였다. 그해 3월 15일에는 정·부통령 선거가 있었고, 그 선거를 앞두고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가면 곤란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시대 학생들은 관제 시위에 자주 동원되었고, 학교 역시
선거 정치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날의 시험지는 시험지가 아니라 자물쇠였다.
시험이라는 제도 안에서 학생의 역할은 답을 쓰는 것이다. 문제를 묻는 일도, 배점이 정당한지
따지는 일도 학생의 몫이 아니다. 주어진 보기 안에서 정답을 고르고, 채점을 기다리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그 시대가 학생에게 요구한 것도 정확히 그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유세장에 서고,
시키는 대로 교실에 앉는 일. 전날 밤 학생들은 모여 글을 썼다. 남아 있는 그 글의 요구는 놀라울
만큼 작았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하루의 휴일을 쉴 권리가 있다.
일요일을 돌려 달라는 말이었다. 정권을 바꾸겠다는 말도, 새로운 사상을 들고 온 것도 아니었다.
그 글은 오히려 자신들이 "현 성인사회의 정치 놀음"과 무관하다고 못 박아 두었다.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자기 일요일에서 손을 떼라는 요구였다. 다음 날 그들은 시험지를
덮고 교문을 나섰다. 답안을 제출하는 쪽에서 채점하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쳐야 할 것은
답이 아니라 문항이라고 판정한 것이다. 그날 대구에서 가장 위험한 물건은 학생이 손으로 쓴 종이
한 장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들이 얻은 것은 거의 없었다. 곤봉과 훈계, 연행과 감시가 있었고, 선거는 예정대로부정하게 치러졌다. 대통령은 그대로였다. 결과만으로 채점한다면 그날의 답안은 빵점에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날을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민주운동이라 부르고, 4·19혁명의 출발점이라고
부른다. 승리에 붙은 이름이 아니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선 일에 붙은
이름이다. 뒤에 일어선 사람들에게는 앞선 사례가 있었지만, 2월의 학생들에게는 참고할 선례가
없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처음 하는 사람은 승산을 계산할 수가 없고, 계산이 불가능한
자리에서는 계산 대신 의지만 남는다
그들이 냈던 답안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전혀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채점되었다. 3월 15일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그때 사라진 열일곱 살 김주열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 그 소식이 전국을 움직였고, 4월 19일 시민들이 거리를 메웠으며, 4월
26일 대통령이 물러났다. 벽이 무너진 날은 4월이지만, 벽은 2월에 이미 금이 가고 있었다.
같은 질문은 시대마다 다른 문항으로 다시 출제되었다.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광주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지조차 오랫동안
밝힐 수 없었다. 채점 결과 자체가 봉인된 것이다. 1987년 6월에는 대통령을 직접 뽑겠다는 요구,
곧 출제자를 우리가 정하겠다는 요구를 들고 사람들이 한 달 내내 거리를 지켰다. 조건과 요구는
달랐지만 질문은 같았다. 우리를 이용하지 말라. 우리 몫을 우리가 결정하게 하라.
나는 첫 문장에 쓴 '영웅'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싶다. 누군가를 영웅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은
나와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고, 나는 안전해진다. 하지만 1960년 2월 28일의 그들은 열일곱,
열여덟이었다. 아마 옆자리 아이가 일어나는지 눈치를 봤을 것이고, 성적을 걱정했을 것이고,
부모님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들은 부당함이 자기 책상까지 밀려왔을 때 책상을 밀고 나온
학생들이었다. 영웅화는 예우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을 교실에 다시 가두는 두 번째 자물쇠다.
그날 그들이 거부한 것이 바로 '학생은 원래 그런 존재'라는 규정이었는데, 우리는 그들을
'태생부터 그러한 영웅'으로 규정해서 안심한다.
지금도 교문은 열려 있다. 시험은 평일에 치고, 아무도 나를 유세장에 데려가지 않는다. 교실에서
또래가 정부를 비판해도 그 말이 어딘가로 보고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것이 공기처럼 당연해서
잘 보이지 않는데, 가장 잘 지켜진 유산은 유산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세대에게 배부된
시험지는 문항 칸이 대부분 비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조심할 것은 오답이 아니다. 출제자를
의심하지 않는 습관이다.
나에게는 아직 투표권이 없다. 그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크지 않으니 크지 않은 것들만 적겠다.
결론이 이미 정해진 듯한 다수결에 습관처럼 손을 들지 않는 것. 누군가 이유 없이 몰릴 때 그
이유를 한 번 묻는 것. 누가 내 편인지보다 누가 절차를 지켰는지를 먼저 보는 것. 그리고 2월
28일이라는 날짜를 아는 것. 전부 채점하는 자리에 서 보는 연습이다. 그날 교실에 남아 있던
백지들이 왜 어떤 만점 답안보다 오래 읽혔는지, 한 번쯤은 각자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