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해독(解毒)
성명여자중학교 2학년 김혜인
동화 ‘백설 공주’의 주인공 백설 공주는 자신을 시기 질투하던 마녀에게 독 사과를 받고, 그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서 쓰러진다. 현실이라고 그런 독 사과가 없을까? 아니, 우리는 수도 없이 독 사과를 마주한다.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어도,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우리는 그 독 사과를 백설 공주처럼 덥석 받아먹는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우리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선택권을 다른 이에게로 돌린다. 그것을 정답이라 믿고, 자신에겐 제일 나은 선택이니.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것이 최고의 선택이 아님을, 그 또한 최선은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회피가 마냥 좋은 무기가 아니란 걸. 만약 우리가 계속 회피하기만 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결국에는 그 달콤한 독에 홀려 현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전히 모르는가? 회피가 나를 위협하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었는가. 대체 무엇이 그런 그들을 일으켰는가. 무너져가는 민주주의, 실현도 못 해보고 그대로 끝내야 했는가.
우리는 안다. 그때의 대한민국은 빛을 가리는 장악이자 죄악이었다는 것을. 죄명은 살인이다. 누군가의 희망, 행복, 빛 그 모든 것을 찢어발기고, 지르밟았음을 과연 몰랐을까? 우리가 내는 목소리는 단연코 작지 않았으나, 닿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회피하는가. 그럼, 무언가가 달라지기라도 하는가? 우리가 바라던 자유, 평화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분명 우리는 자신 하나하나가 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열쇠인 것을 안다. 그럼에도 회피했던 것은 무슨 연유인가. 그리고 그들이 들고 일어섰던 건 또 무슨 자신감일까. 우리는 ‘식음 전폐’에 빠져 모두 손을 놓았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포기하자.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은 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었다.
모두가 침묵할 때, 제일 먼저 세상을 밝힌 촛불은 순수했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독 사과를 먹지 않았다. 그 대신 촛불을 들고서 어두웠던 세상을 밝혔다. 황홀함이란 이런 것이었다. 유년 시절 끓어 넘치던 열정, 친구와 함께했던 기억, 누구보다도 순수했던 마음. 그 모든 것이 그들의 발판이 되어준 것은 아닐까.
독 사과를 먹고 쓰러진 백설 공주는 말을 타고 저만치 달려온 왕자로부터 잠에서 깨어난다. 왕자는 백설 공주에게 어떤 존재인가? 구원자, 착한 이, 현명한 이 모두일 것이다. 그렇담, 2.28 민주화 운동은, 그때의 학생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아마 왕자와는 사뭇 다른 이일것이다.
정의로운 이, 희망찬 이, 두려움을 극복한 이. 왕자와 그들의 차이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가?’ 왕자는 지켜야 해서 백설 공주를 구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왜 그들의 권리를 침해당해야 했는가. 왜 학생들은 국민이 아니라며 구박을 받아야 했는가.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며, 절대로 어른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될 공간이 아니었다.
왕자가 공주에게까지 오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이 세상에 저항하여, 끝내 민주화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때를 놓쳤는가 하고 한다면 아니다. 사실 때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민주화는 원래라도 있어야 했으니. 그들의 용기는 시시하고 작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무섭지 않았냐고 하면 아니다.
그들이 언제나 대항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민주주의, 그 평화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일어섰을 뿐이다.
왕자로 인해 백설 공주가 독 사과를 뱉어내듯, 2.28 민주화 운동 이후 어른들도 두려움을 극복하였다. 모두가 합을 맞춰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한 4·19 혁명. 왜 그것을 혁명이라 부르는가?
학생들의 목소리, 뱉어낸 독 사과, 두려움을 극복한 어른들. 모두 모여 하나의 횃불이 되어 세상을 밝혔음에 경이롭다. 붉은 노을이 되어 번진 하늘은 배경이 되고, 비둘기는 푸드덕- 하늘을 나니 푸른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마음이 놓이고, 몸에 힘이 풀리던 그날. 기다리던 민주화를 맞이했다.
더 이상 어떤 억압은 없을 것이다. 혹여나 있어도 이 일이 우리의 힘이 되어 우리를 일으킬 것이다.
뱉어낸 독 사과는 길이길이 밟혀 사라지고, 왕자도, 백설 공주도 지금 이 자리엔 없지만, 언제나 정의로 우리는 하나다. 정의로 해독(解毒)한 2·28 민주 운동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