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그날의 이야기
왕선중학교 2학년 김정은
1960년 2월 26일 금요일
오늘은 신나는 금요일이다. 곧 다가올 일요일에 무얼 할지 계획도 짜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나에게 정말 절망스러운 소식이 들려왔다. 학교에서 원래 3월에 하려고 하던시험 일정을 갑자기 이번주 일요일로 바꾸어서 꼭나와서 시험을 쳐야한다고 하셨다. 일주일중 나에게 주어지는 단 하루가 빼았기다니.. 선생님께서는 이번주 일요일 빠짐없이 학교에 나와야하셨다. 28일 오후 1시에는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나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한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들은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2월28일 일요일은 민주당 강연회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일요일에 진행되는 강연회와 아무 상관에 없는것이냐고 물었더니 선생님께서는 그저 학교 사정 때문이라는 말만 반복하셨다. 1,2학년의 모든 학급에서 이로인한 논쟁이 벌어졌다. 나는 우리 학생위원회는 이 일요일 등교 지시령은 단순한 일정 변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는 내일, 26일
토요일 우리 학교를 포함한 경북여고, 대구여고, 대구공고, 대구농고 등 각 학교의 대표와 우리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2월27일 토요일
오늘 우리집에서 각 학교의 대표들과 만났다. 우리는 부당한 일요일 등교지시에 시위를 조직하기로하였고 상호 연락망을 구축하고 결의문을 작성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밤새 손을 잡고 애국가를 부르며 민주주의를 기원하며 울어댔다.
2월28일 일요일
드디어 오늘 결전의 날이다. 나는 어젯밤에 약속 한대로 12시 55분 강연대에 올라 준비한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백만 학교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권리를위하여 섬슴치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피가 지금 이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을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것이다.” 라고 외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을 함성을 지르며 학교를 빠져나갔다. 나도 얼른 뒤따라 나났다.
우리는 학교를 벗어나 그 계속달렸다. 우리는 선생님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아, 다른 학교에서도 벌써 시위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우리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불의에 항의하며 달렸다. 우리는 반월당을 거쳐 경북도청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아주머니들이 주시는 주먹밥과 물을 먹으며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교문 돌파가 어렵다고 연락이 온 대구고 학생들도 마침내 시위를 시작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시위를 나올거라곤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엄청 많은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해서 정말 고맙고 힘이나 더 열심히 달렸다.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인데 오늘 시위에서 220여 명의 학생들이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웠고 누가 뭐래도 잘한일이다. 우리는 달리고, 또 달릴 것이다.
이 일기를 쓰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시위를 했다는게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구에서 시작된 일이라는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종종 이런 위대한 분들을 잊고 살아갈 때도 있는것 같다. 우리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하신 분들을 항상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을가져야한다.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마음을 그대로 받아 우리도 항상 애국심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