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2월 28일, 그날의 너에게

너는 지금, 거울 앞에서 마지막 단추를 채우고 있겠지.
떨리는 손끝으로 교복의 옷깃을 여미며, ‘오늘 정말 나가도 될까?’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지도 몰라.
창문 너머로 비치는 겨울 끝자락의 햇살,
두꺼운 공기 속을 가르며 울리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확성기의 명령.

오늘은 일요일이야.
하지만 학교에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지.
선생님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어른들은 눈을 피했어.
하지만 너는 알았지.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지 못하게 하려는 거야.”
누가 말하지 않아도,
교복을 입고 강제로 등교하라는 명령 속에
감춰진 진실을 너는 가슴으로 읽었을 거야.

그래서 너는 나왔다.
경북고, 대구고…
서로 다른 교정에서 모인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어깨를 맞대며, 책 대신 정의를,
교과서 대신 깃발을 가슴에 품고 거리로 나섰지.

너의 발걸음은 떨렸지만,
마음은 단단했어.
그 외침은 처음에는 조용했지만,
결국 전국을 흔드는 함성이 되었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불꽃이 되었지.

그날의 너는 몰랐겠지.
너의 한 걸음이
3.15 부정선거를 향한 분노로 이어지고,
김주열 열사의 눈동자 속에서 다시 살아나며,
마침내 4월 19일,
서울을 뒤덮은 수많은 청춘들의 외침으로 번질 줄은.

**

그리고 지금, 나는
65년 뒤의 너와 같은 또래.
똑같이 교복을 입고,
아침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해.
정의와 분노를 SNS로 공유하고,
디지털 속 세상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배워가는 아이야.

하지만 가끔은 헷갈려.
이게 정말 외침일까?
그저 누르기 쉬운 ‘좋아요’ 버튼과
쉽게 공유되는 분노 사이에서
나는 진짜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눈앞의 부조리에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언제부턴가 분노조차 피로해지고,
정의는 검색어에 밀리고,
진실은 알고리즘에 가려지기도 해.

그때마다 너를 떠올려.
교복을 입는다는 게,
그 시대엔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는 걸
너를 통해 알게 되었어.

지금 우리가 싸우는 건
너처럼 눈에 보이는 억압이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보이지 않는 침묵,
익숙해진 무관심,
쉽게 포기되는 기억과의 싸움이야.

나는 손가락으로 정의를 누르고 있지만,
너는 온몸으로 외쳤지.
나는 좋아요를 누르지만,
너는 거리에서 손을 들었어.

그래서 나는 너에게 자꾸 되묻게 돼.
“지금의 나는,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2월 28일.
그날의 교복은 더 이상 입을 수 없지만,
그날의 외침은 오늘도 입을 수 있어.
그건 입는 게 아니라 지키는 거니까.

너는 외쳤지.
“우리는 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그 외침은 내 마음속에도 새겨졌어.

그래서 나도 결심했어.
오늘의 교복을 입고,
이 시대의 언어로 외치겠다고.
작은 글 한 줄,
작은 말 한 마디라도,
진심이라면 세상을 흔들 수 있다고 믿으니까.

역사는 반복되지 않기 위해 기록되는 거라고,
우리는 배웠어.
그날의 너는 역사였고,
오늘의 나는 그 역사를 기억하는 자야.
그리고 기억은 곧 책임이야.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너를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어.
이 작은 목소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외침이 되길 바라면서.

우리는 잊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계속 외칠 것이다.

민주주의는 멈추지 않는다.
그날의 너처럼,
오늘의 나도.

—
2025년의 어느 날,
한 학생이 그날의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