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동상(2·28원로자문위원장상)
2.28 민주화 운동, 그 후의 이야기
왕선중학교 2학년 김시우
1960년 2월 26일 지금은 부통령 선거 기간이다. 하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이승만이 어떤 수를 쓰고 있는게 분명하다. 이승만의 가장 유일한 대적인 조병옥이 갑작스럽게 죽고 나서, 이기붕의 당선이 사실상 명확해졌는데, 이승만이 86세였으니까 이승만이 돌아가면 대통령 자리를 부통령에게 넘길 것이 분명하기에, 이기붕을 일부러 당선 시킨 것이고, 사람들은 이승만이 자신의 세력을 잇기 위해 손을 썼다는 것에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분명히 이승만을 의심하고 있다. 그렇게 시끄러웠던 나날에, 갑자기 학교에서 일요일에 등교를 하란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싶었다.

솔직히 학생들 사이에서는 “아니 이게 뭔….”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일요일 등교는 거부할 것 같다.
심지어 명분도 갑자기 중간고사를 일찍 친다던지, 갑자기 듣도보도 못한 토끼 사냥을 나간다던지… 너무 수상했었다.
고사 일찍 치는건 백번 양보해서 뭐 그렇다 치고…
토끼 사냥은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올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고등학생한테 토끼사냥이 웬말인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어이없게 까지 학생들에게 부당한 일요등교를 강조했던 것이, 이승만 정권이 부통령 자리를 자신의 세력의 넘기기 위한 계략 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우리는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시위 하루 전인 1960년 2월 27일에 부당한 일요등교에 대하여 항의하기 위해 결의문을 작성하고, 시위를 조직하였다.
시위를 조직할 당시에는 몇몇의 반대도 나왔던 것 같다.
결의문은 학생들의 뜻을 모아 썼다.
다음날, 우리는 시위를 시작할 것이다.
막상 하자고는 했는데, 솔직히 좀 많이 떨렸다.
다른 도시 사람들에게 우리의 생각을 이렇게 밝힌다는 것이 부담이 안된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고 우리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시위를 시작했다. 대구 학생 모두가 반월당으로 걸어가며 시위를 시작했다.
우리는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까 걱정했지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주변의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우리를 응원하며 북돋아 주었다.

사람들의 응원으로서 우리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이 똑같다는 믿음과 시위를 할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우리는 최초의 공식적인 시위를 대구에서 일으켰으며, 이 시위는 곧 다른 도시에도 퍼져 곧 우리나라 전체가 이승만을 비판 할 것이다. 지금 이 일기를 쓰는중에 생각한건데, 부당한 일요등교가 시간을 지연하기 위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너무 지저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자기 세력 이으려고 이렇게까지 하는것이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를 더 돋았던 것 같았다.
우리는 부당한 일요 등교 만으로 이 시위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당한 일요등교 뿐만아닌,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국민의 삶이 무너진 상황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이 일기를 다른 도시 사람들이 본다면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는 시위를 일으키면 좋겠다.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2.28민주운동이 대한민국 최초의 학생운동이었다.

즉, 우리는 학생이라는 신분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운동을 한 최초의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는 만약 이승만 정권을 물러나게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당당하게 우리의 주장을 앞에서 말하고, 결의문을 쓰며, 시위를 벌인 최초의 학생들인 것이다.
근데 우리의 힘만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기엔 솔직히 부족한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도 이러한 시민들의 주장을 강하게 나타내었으면 한다.
시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생각을 남 앞에서라도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