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동상(2·28원로자문위원장상)
기억 위에 그은 빛
경기외국어고등학교 2학년 김지은
2월 28일.
학교에 돌아가기 3일 전이다.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이 있지만, 나에게는 그저 숙제를 허겁지겁 마무리 해야 되는 날에 불과했다.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처럼 교과서에 밑줄을 그으며 외우던 사건들은 기억했지만, 2월 28일은 생소했다. 역사 수업을 어려워했지만, 성실히 수업은 듣는 나였기에 2월 28일은 수업에서조차 배운 기억이 없었다. 그래도, 내가 빠뜨렸을 가능성이 있어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친구들의 물음표 가득한 표정들 뿐이었다. 내가 수업을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불안감과 함께 질문이 생겼다.
“왜 우리는 이 날을 모르지?”
2월 28일.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맞서 대구 고등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선 사건이다. 우리가 열심히 밑줄을 치던 3.15 부정선거 시위와 4.19 혁명은 이 사건을 토대로 이어져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던 나날들의 시작점이 되었던 날은 교과서에 한 줄로도 조명되지 않았다. 나와 같은 나이의 이들은 나처럼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평범한 일상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당시의 억압에 저항하기기 위해 직접 나선 목소리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자유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순간 조지 오웰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다” 라고 했다. 모두 외면하고 감추려고 했던 현실에 맞선 학생들은 시위가 아닌,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신문과 소문조차 거짓으로 가득 찼지만, 학생들은 거리로 나서서 진실을 말했다.
오웰이 쓴 ‘1984’에서도 절대 권력을 가진 빅 브라더가 진실을 컨트롤 한다. 신문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어제의 일, 어제까지 있었던 말도 모두 번복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에 의심을 품지 않도록 세뇌 당한다. 마치, 우리가 진실을 눈 감으라고 강요 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윈스턴은 금지된 일기를 쓰면서 빅 브라더에 저항한다. 그는 “자신의 기억이 진짜라는 것을 믿는 것조차 금지된 사회에서 진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기억하는 것이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 많은 정보의 폭풍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정작 중요한 정보들을 잊어가며 진실을 지키는 것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니즈에 맞는 영상들과 가짜 뉴스들, 중독적인 게임들에 지배되어 진실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2월 28일의 혁명도 잊혀질 위기에 놓여있다.
수 많은 사건들이 나열된 역사 교과서에 형관펜을 칠 자리조차 없는 이 노력은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매일 같이 단어들이 사라지고,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묘사하지 못하는 1984 속 세상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은 탄압 당하고, 왜곡되고 삭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교과서에도 실려있지 않고, 많은 고등학생들이 잊은 2월 28일, 그 날의 사건을 알리고자 했다.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 윈스턴이 그랬던 것처럼, 한 사람의 기록과 기억만으로도 진실은 살아나기 때문이다. 나부터 이 날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월 28일에 있었던 일들을 내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알리며 기억하려고 했다. 이 날의 기록은 역사교과서의 빈 여백에 숨겨져 잊혀가고 있다.
교과서의 문장조차 외우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빈 여백의 사건까지 찾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 일수도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나와 읽는 사람들부터 기억한다면 그 여백도 어느 날에는 존재감을 뽐내고, 학생들의 형광펜 아래 빛날 수 있다고 믿는다.
2월 28일.
이제는 더 이상 학교 가기 전 숙제 마감일이 아니다.
나는 이 날을 기점으로 내 가슴 속에 존재하는 그 날의 기억들에 밑줄을 그어간다. 정보의 폭풍 속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지키고, 빛나는 혁명에 대해서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