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동상(2·28원로자문위원장상)
작은 외침, 큰 변화
경북공업고등학교 2학년 김도현
2월의 대구는 평소처럼 춥고 스산하다. 잿빛 하늘 아래 차가운 바람이 도시 골목마다 스며들고,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껴입은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1960년 2월 28일 그날, 몇몇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런 바람도 꺼트릴 수 없는 뜨거운 용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대구에도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이 바람은 단순한 겨울의 찬 공기가 아니라, 무언가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일으킨 바람이었다.
나는 그날의 장면을 여러 번 상상해 본다.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책이나 다큐멘터리, 박물관에서 봤던 모습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특히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2·28 민주운동기념관에 가셨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이 나라를 바꾼 건 어른들만이 아니야.
너처럼 교복 입은 학생들이었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참 이상하게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학생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건 나에게 너무 낯설고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날, 당시 정권은 야당 부통령 후보의 유세를 막기 위해 일요일임에도 학생들에게 등교를 강제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교실 대신 거리로 나섰고, 도심 속을 걸으며 부당함에 맞섰다.
교복을 입은 채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다잡았을 그 순간이 얼마나 떨리고 무서웠을까.
그 모습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불의에 맞선 양심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어리다고 생각되던 학생들이 가장 먼저 용기를 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그 작은 외침이 결국 전국으로 번져 4·19 혁명의 불씨가 되었고,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간다. SNS에 내 생각을 올릴 수도 있고, 대통령을 비판해도 잡혀가지 않는다. 투표권도 주어지고, 법 앞에 평등하다는 권리도 보장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그냥 주어진 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외침, 용기, 심지어 희생이 쌓여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학교에서 전교 회장 선거 투표를 했다. 학교 강당 안에서 서 있으면서 괜히 긴장되고 가슴이 뛰었다. 종이를 받아 들고 투표소 안에 들어갔을 때, 문득 2·28 학생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아무런 보장도 없이 거리로 나섰는데, 나는 이렇게 편하고 손쉽게 투표를 하고 있으니까.
한 표를 던지는 손이 무거워졌다. 그때 느꼈다. 민주주의는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걸.
2·28 민주화운동은 과거의 일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계속 묻고 있다.‘너는 지금 옳다고 믿는 것을 제대로 말하며 살고 있는가, 누군가를 위해 목소리를 낸 적이 있는가, 내가 사는 사회를 위해 책임을 지고 행동한 적이 있는가’를 계속 묻고 있다.
사실 나도 부끄러운 적이 많았다. 친구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못 본 척할 때가 있었고, 뉴스에서 안타까운 소식을 봐도 ‘나랑은 상관없어’라며 넘긴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침묵들이 모이면, 결국 누군가의 용기를 짓누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지금도 불공정은 있고,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구의 차가운 겨울 하늘을 떠올린다. 그 안에서 따뜻한 용기를 가지고 거리로 나선 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오늘의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그 바람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민주주의는 완성된 게 아니라 지켜나가야 할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그 약속은 단지 역사책에 쓰인 단어가 아니라, 지금을 사는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선배들이 이어온 그 정신을 우리가 잇고, 또 그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전해주는 일.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몫이 아닐까.
2월의 바람이 다시 불어올 때, 나는 조용히 되새긴다. 나도, 지금 이 자리에서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