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눈을 뜨고 있어라
대구동도중학교 1학년 정다겸
난쟁이인 데다가 기형으로 태어난 바르톨로메는 행차 중이던 스페인의 어린 공주 눈에 띄어 놀이개로 발탁되었다. 심한 꼽추에 손가락까지 휘어서 그저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외모가 흉측했던 바르톨로메는 왕궁으로 끌려가 개처럼 분장하고 공주에게 귀여움을 받는 인간 개가 된다.
이 스토리는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라는 스페인 청소년 소설이다.
얼마 전에 읽은 책인데, 작가는 화가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에 등장하는 개가 사실 인간이었다면?’ 하는 상상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시녀들’의 그림을 보면 중간에 어여쁜 공주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난쟁이가 있고, 개 한 마리가 난쟁이의 발밑에 깔려 있다.
그림이 마치 암시라도 해주듯, 바르톨로메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갖은 고초를 겪는다. 심지어 가족인 아버지조차도 그를 시골에 버리고 도시로 이사하려고 했었다. 아주 먼 과거의 외국 이야기이지만, 장애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 분위기가 어떤지 대충 봐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짐작하지만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스페인 못지 않게 장애인을 차별하는 행태는 반드시 존재했으리라고 여긴다.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차별받지 않고 살 권리가 있다. 장애인들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복지도 주어진다.
이건 혜택이 아니라 자유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일까.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법률의 범위 안에서 남에게 구속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위. 사전에는 자유를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법으로 자유를 보장받고 있으므로 우리는 원하는 물건을 사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배달앱으로 치킨을 시켜먹고, 아직 미성년자이지만 휴대폰도 가지게 되었고, 가족과 함께 멀리 해외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던 이유. 이 모든 건 다 자유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자유는 원래부터 우리 옆에 존재했던 것일까. 아니다. 사실 이 자유는 누군가가 못청껏, 또 피터지도록 외치고 부딪쳐서 얻어낸 민주주의의 결과물이자 꽃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된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식민지가 끝나자마자 6. 25 전쟁이 터졌고, 곧이어 나라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혼란한 상황은 계속 되었다. 그즈음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졌는데, 원래 정권을 가지고 있었던 당에서 상대 당의 선거 유세가 일요일 대구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서 고등학교에 등교 지시를 내렸다. 반대쪽 당의 선거 유세를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일요일은 전 세계가 정한 공휴일이다. 그런데 정치적 욕심 때문에 공휴일에도 학교에 등교하라고 한 지시는 부당한 명령이다. 이에 격분한 경북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구의 곳곳에서 이 지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뜨거운 열정을 타고 온 사방으로, 전국적으로 전해졌다.
1960년 2월 28일, 대한민국 최초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결국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불씨가 되어 이후 수많은 민주화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고, 마침내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장본인이다.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경북고등학교가 있다. 2.28 민주화 운동의 내용에 대해 알고난 이후부터 난 그 근처를 지나칠 때마다 괜스레 마음이 묵직해지면서 또 웅장해지곤 한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도 경북고등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괜히 누군가에게 그 가깝다는 사소함을 자랑까지 하고 싶은 건, 우리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지금까지 오게 만든 시초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 당시의 고등학생이라면 어땠을까. 나도 부당함에 맞써 시위에 나갈 수 있었을까?
물론 나가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그때의 고등학생들과 달리 정부의 진압이 무서워서 선뜻 나서지 못했을 것 같다. 그때 그 고등학생들의 용기 덕분에 여러 지역에서도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그 민주화 운동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런 민주주의 사회에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게 된 것임을 알기에 나의 생각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어린 공주 옆에서 인간 개 노릇을 하던 바르톨로메는, 자신이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수없이 고뇌하고 갈등했다. 비록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그를 움직이게 하였고, 주변에도 그의 열정이 전해져서 결국 공부로부터 탈출하여 원하는 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회가 인정해주진 않았지만 스스로 깨우치고 일어서려는 의지에, 주변인들이 눈을 뜬 것이다.
눈을 뜬다는 건 보인다는 의미이다. 바르톨로메를 알아봤듯이 부당함과 불의를 알아본 경북고의 학생들이 있었으므로 민주주의와 자유가 가능했다. 만약에 불의가 보이지 않았다면 바르톨로메도, 경북고 학생들도 그저 불합리한 현실에 순응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보기 위해 눈을 뜨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눈을 뜨고 있어야 어렵게 얻은 이 민주주의와 자유도 굳걷히 지켜나갈 수 있을 거라는 다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