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지나간 청춘이 지금의 청춘에게 준 미래
왕선중학교 2학년 김라희
1960년 2월 26일, 종례시간.

아주 뜬금없는 말이었다.
일요일 등교라니.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일요일이 되면 친구들과 같이 요즘 한창인 선거 후보들의 연설 보러가자는 약속도 무너지고…
무언가 우리를 막는 기분이 스르륵 지나갔다.

학생들의 반발에도 석연찮은 듯 쳐다보며 대충대충 넘기는 선생들을 보며, 아까보다 조금 더 허무해졌다.
겨울 때문에 무너진 나무처럼.

하지만 그날, 같은 반이었던 학생부 위원장 이대우는 평소처럼 무언가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느 때처럼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의 아이들과 함께라는 점이 달랐을 뿐. 그때까지는 그저 일요일 등교에 충격 먹은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는 아버지가 항상 저녁 시간마다 챙겨보시는 신문이 놓여 있었다. 차디찬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진 신문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여느 때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로 집에 없었다.
어린 동생은 형이 온 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고, 그 동생의 형 되는 난, 신문을 들고 집에 천천히 들어갔다.

어쩌면 그냥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가끔가다 신문을 보여주시던 게 생각나 신문을 좀 읽을 줄 알았으니, 호기심에, 단순한 호기심에 들고 있던 신문을 펼쳐보았다.
조금은. 즐거웠을 지도 모른다. 신문 속에서 우리 학교가 포함된 이야기가 수두룩이 떨어진 것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신문 속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단어들이 곳곳에 끼어 있었다. 그 단어들을 빼고 읽더라도 대충 내용을 알 수 있었던 건

‘토끼 사냥 간다며 민주당 부통령 선거일 학생들 등교 지시…’
‘1960년 2월 28일 열리도록 예정되어 있는 민주당 후보 장면 박사의 부통령 선거일, 근처 대구 시내 공립학교 학생들의 일요일 등교를 지시한…’
나는 순간 신문을 툭하고 떨어뜨렸다.

일요일 등교하는 이유가, 이렇게 터무니 없는 이유였다는 말인가.
최근에 아버지가 한탄하시던 말 중에서 몇 가지가 떠올랐다.
“하.. 거참.. 갑자기 상대 후보가 세상을 떠났으니 당연히 이승만이 될 거였군..”
“부통령도 자신과 같은 당 후보를 뽑아달라고 달려들 테니. 걱정이구먼.”
머릿속이 겨울눈처럼 새하얗게 물들 때쯤, 누군가 집 대문을 탕탕 두드린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달려가 열어선 대문 앞에는, 여전히 단단한 의지가 엿보이는 얼굴이 드러났다. 이 대우. 그 아이였다.

“박윤재. 혹시.. 들었어?”
“일요일 등교 지시가 떨어진 게, 우리가 민주당 대통령 유세 현장에 가지 못하게 돼서라는 거”

그 아이의 얼굴은 한 톨 변하지 않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 눈 속에는 무언가가 단단히 굳어있었다. 내가 말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그 아이는 대답조차 듣지 않고 부탁하듯, 하지만 이미 정해진듯한 의지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래서 우리가 28일 날, 시위를 열 거야. 우리가 두고 볼 수만은 없잖아. 우리도 이 나라의 국민이고, 누군가를 선택할 자격이 있어.
우리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야. 심지어 미래의 누군가에게 등까지. 그러니까.. 혹시 우리랑 가지 않을래?
우리들의 미래와,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서”

떨리는 손끝이 조용히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 사실 아까부터 친구에게 배신 받은 듯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대우가 말하는 그 미래를, 지키고 싶어지는 마음도 조금씩 피어나는 것 같았다.

“좋아. 같이 갈게”
나의 수락에 그 아이의 눈에서 조금의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반가운 듯 나의 손을 끌고 자신의 집에 데려간 그 아이의 집에는 이미 여럿이 모여서 의논하고 있었다.

“우리는 내일.. 28일 날에 거리로 나갈 거야. 유세 현장으로 가지 못하도록, 우리의 선택권을 막은 정부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말이야.
이미 다른 학교 애들도 모여서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미 정부에서 불려 나온 군인들이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직접 만들어야 되니까.

여전한 겨울, 1960년 2월 28일. 다음날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서 지시받은 대로 등교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에서야, 우리 청춘의 진정한 힘을 보여줄 날이 다가온 것이다. 학생들은 선생들이 조례를 들어오기 전에 준비를 시작했다.
무언가 물질적으로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우리의 희망이 부서지지 않도록 단단한 의지만이 존재할 뿐이었으니까.

선생들이 조례를 하고 나가자, 이대우가 벌떡 일어나 아이들을 향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과목 선생들이 들어오기 까지는 아직 시간이 5분 정도 남았으니 충분히 이 학교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우가 모인 아이들의 한가운데 있다가 순식간에 조회단에 올라가 외치기 시작한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서는 이 목숨이 다 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백이며, 이러한 행위는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우리는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눈물을 많이 흘릴 학도요, 조국을 괴뢰가 짓밟으려 하면 조국의 수호신으로 가버릴 학도이다. 이 민족애의 조국애의 피가 끓는 학도의 외침을 들어 주려는가?
우리는 끝까지 이번 처사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있을 때까지 싸우련다.
이 민족의 울분, 순결한 학도의 울분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나?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 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련다.”

그 순간 모든 아이들이 겨울날 간간이 피어나는 꽃잎처럼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날인만큼 서로는 서로를 굳게 믿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리로 나아가며 다른 학교들이 이미 진압 당했다는 소식도 듣기는 했지만, 지금은 하나하나 신경 쓸 여유로운 시간이 없다. 우리들은 이미 길을 아는 듯 나아가며 우리의 희망을 외쳤다. 작은 동네에서 시작된 불씨는 점점 더 커져서 꽃봉오리를 피우듯 자랐다.

다른 학교 학생들도 소리를 듣고 나오기 시작하면서, 점차 정부에서 불려온 군인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있던 몇몇 동무들이 잡혀나가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우리는 굳건하게 계속 해서 나아갔다. 어른들의 박수소리, 우리의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에 시끄러운 날, 동시에 처음으로 시끄러움이 좋다고 느낀 날이었다.

60년이 더 지난 오늘날, 나와 나의 동무들은 벌써 여든을 넘었다.
손끝이 손쉽게 떨어지고, 지치기 일쑤지만, 가끔 길 가다가 우리만큼이나 단단해 보이던 그 청춘들을 보니 지내온 세월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이, 우리처럼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 마음속 목소리를 외쳐줄 씨앗이라면, 이번 삶은, 참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운동이 미래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있었던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되고 그 불꽃이 우리의 미래를 이렇게 바꾼 것이, 참 기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나뿐만 아닐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가 지나간 미래에, 심어진 씨앗들이 자라, 새로운 씨앗을 지키고 만들어갈 수 있기를 빌며. 앞으로의 미래도 하염없이 밝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