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대상
기억의 깃발 아래, 우리는 걷는다
살레시오여자중학교 2학년 김나영
처음부터 모두가 용감하진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누군가의 내일을 위해 먼저 떨리는 발을 디뎠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의 하늘 아래에서.
그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학교 담장을 넘었다. 고요해야 할 일요일, 그들은 거리로 나와 외쳤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단순한 외침이 아닌, 민주주의가 이 땅에서 다시 숨쉬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아닌 학생들이 먼저 시작한 민주화의 발걸음. 2.28민주운동은 그렇게 교과서 밖, 시간의 틈 사이에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있다. 뉴스 속에 세상을 바라보며 자꾸만 나에게 묻게 된다.
“민주주의는 지금도 살아있는가?”, “나는 그 깃발을 건네받았는가?” 한강 작가는 인터뷰에서 물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 멈춰 서서, 나는 오래도록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말한다. 2.28의 그들이 지금 내게 손짓하고
있다고. 그들의 결심과 용기가, 지금의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고.
죽은 자는 산 자를 살릴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한, 계속되는 생명이다.
그로부터 수많은 계절이 지나고 수많은 봄이 찾아왔다. 5.18의 피 끓는 외침, 6월 항쟁의 촛불 물결, 그리고 광장마다 타올랐던 청춘의 함성들.
그 모든 순간에 처음 불을 지핀 것은 2월의 어느 하루, ‘학생’이라는 이름의 그들이었다.
나는 그저 오늘의 중학생이지만 가끔은 내가 입은 교복이 너무 무거울 때가 있다. 잊지 말아야할 것들이 너무 많고, 생각보다 이 시대는 조용한 척을 잘한다. 권력은 여전히 그럴듯한 말들 뒤에 숨고,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정답에만 길들여진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선 2.28의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혼란 속에서 고개를 들고 바라보고, 작더라도 옳음을 말하겠다는 마음. 민주주의는 결국, 그런 마음이 모여 만든 구조물이다.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책상 위에 놓인 낱말이 아니라, 누군가의 무릎 위에서 꿋꿋하게 자라난 신념이다. 우리는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속에서도 수없이 많은 부당함을 목격한다. 조용히 따르는 것이 미덕인 듯 여겨지지만, 나는 안다. 그것은 옳지 못한 행동인 것을. 처음 침묵을 깬 사람은 언제나 손가락질 받는다. 하지만 역사 속 이름은 늘 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가끔은 묻는다. 과연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을까? 공정한 선거를 하고, 뉴스를 비판하고, 촛불을 드는 세상이면 충분한 것일까? 하지만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기에 매일 다시 살려내야 하는 삶의 방식이다. 눈감는 습관 대신, 바라보는 용기를 선택해야
하는 당연하지만 어려운 매일의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에도, 조금은 나아진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믿음으로. 그리고 기억한다. 민주주의는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살려내야하는 것임을.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 ‘그때 그 학생’이라고 불릴 수 있기를 바라며.
깃발은 여전히 펄럭이고 있다. 지금, 우리의 교복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