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종이와 걷는 아이들
반석고등학교 1학년 차비원
전단 한 장이 공중에서 허우적이며 날아갔다. 민호는 앞으로 걸었다.
경찰 저지선을 향해. 발밑엔 누군가 뿌린 전단이 널브러져 있었다.
회색 도로 위, 잉크가 번진 종이 위로 민호의 운동화가 한 발씩 닿았다.
차가운 바람이 교복 자락을 흔들고, 군화 소리와 확성기 소리가 겹쳐 금새 귀가 멍해졌지만, 그는 계속해서 걸었다. 누가 끌고 가지 않으면 멈추지 않겠다는 듯이. 그 옆엔 대구고 학생으로 보이는 이가, 조금 뒤엔 경북고 누군가가 각자의 교복을 입고 민호와 같이 발을 맞춘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 대화는 없었지만 움직임은 질서였다. 동시에 다가가고, 동시에 멈췄다. 지도자는 없었지만, 방향은 있었다.
민호는 주머니에서 마지막 전단 한 장을 꺼냈다. 두 번 접힌 종이를 한 번 펴더니 조용히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학원의 자유를 보장하라.”
글씨는 번졌고 손끝이 떨렸다. 누가 쳐다볼 틈도 없이 종이를 하늘로 던졌다. 바람이 그것을 들어 사람들의 머리 위로 올렸다. 한때 국정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던 단어들이 모여 도로 위를 떠다녔다.
순간, 무전기 소리와 함께 경찰 하나가 학생 쪽으로 뛰었다. 곧이어 서로가 서로를 밀고 당기는 소란. 누군가는 잡혔고, 누군가는 달아났다. 민호는 멈추지 않았다. 그 누구도 고함을 치지 않았다.
그저 몸으로 말하는 중이었다.
그가 경찰과 마주치기 직전, 멀리서 사이렌이 울렸다. 땅이 울렸고, 공기가 흔들렸다.
한 경찰이 민호의 팔을 움켜잡았다. 돌처럼 단단한 손아귀였다. 하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똑바로 경찰의 눈을 보았다. 그 눈은 무언가를 두려워했고,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손목방향이 비틀리고, 어깨가 돌아갔다. 시멘트 바닥이 가까워졌다. 이러다 그의 얼굴이 도로와 평행해지겠다 싶을 즈음, 어디에선 또 다른 전단이 날아올랐다. 더 멀리, 더 높이.
그 순간, 민호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현재의 자유는 태어났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 손으로 한 걸음씩 가까이 가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틀렸다고, 기꺼이 보여주겠다고.
그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때를 기다린다고해서 결코 사회가 공평해지는 게 아니며, 공무원들이 작성한 교과서대로 암기한다고 해서 이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닥에 넘어져 고개를 치켜든 채, 민호는 자신을 따라오던 경찰에게 말했다.
“나는 그냥 축에 가까워지자는 거예요. 원래 있어야 할 쪽으로.”
말의 소리는 주변에 묻혀 작았지만, 분명했다. 경찰은 민호의 눈을 마주보다가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머뭇대더니, 무전기를 들고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렸다.
그새 민호는 다시 일어섰다. 슬슬 발등이 저려왔고, 찢어진 입술에서 피가 났다. 하지만 몸의 중심은 결코 흐트러지지 않았다. 종이는 다 발 밑으로 떨어졌지만, 손은 여전히 들린 채였다.
그 순간, 뒤에서 또 다른 학생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애도 얼굴은 익지 않았지만, 그와 같은 속도로 걷고 있었다. 그 뒤를 한 명, 두 명, 이어서 여러 명의 학생이 따라나섰다. 넘어지고 밀리고 끌려가던 또래들의 손목을 이끌어주는 친구들도 있었기에 민호는 더욱 더 굳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이 거리에 떨어진 전단 한 장, 그리고 이 고통조차도 민주주의로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임을 알기에 그 길 위의 누구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