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스스로만을 위해서가 아닌
고등부 이재황
스스로 밤 귀가 어두운 편이라 자부했거늘, 요즘은 소음 탓에 통 잠들지 못한다. 이게 다 쓸데없는 운동을 한답시고 밤낮 할 것 없이 모여서 떠드는 학생들의 탓이다. 이게 벌써 며칠째인지!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해 방 한구석에서 용도 불명의 기다란 막대기를 하나 집어들고 밖으로 나왔다.

손에 착 감기는 두껍고 차가운 철봉의 감촉에 없던 자신감도 솟아나는게 느껴졌다. 문을 열고 집을 나서니 한밤과 새벽이 섞인 듯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약간의 이슬과 차가움, 혹은 서늘함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기묘한 온도다. 다소 얇은 옷을 입은 난 재채기를 뿜었다. 거기 누구요!

단호하고도 힘 있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들이 잘못한 줄은 아는 건지, 되려 당당한 목소리에 열이 뻗쳤다. 누구긴 누구야! 나다 이 새끼야!
소리가 난 쪽으로 움직이니 얼마 안 가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한 명 튀어나왔다. 성인이라 부르기에는 얼굴이 조금 앳된 청년은, 한밤중에도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달빛이 청년의 눈빛에 비춘다. 청년의 어깨와 머리칼 너머로 힐끗힐끗 보이는 하늘은, 새벽이 섞여 짙은 남색을 띄고 있었다. 티 없이 맑은 저 눈동자에 시선을 빼앗기기에도 잠시, 아직 어두운 저 하늘을 보자 울화가 터져나왔다. 이봐요! 학생! 밤중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 뭐 운동할 거면 저기 멀리 가서 해요. 그 말에 청년은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사과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예의바르고 어디 되바라진 곳 없는 젊은이였다. 문득 집에서 자고 있을 어린 아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6살 정도의 어린 나이지만, 얼마 안 가 학교에 다니고 친구를 사귀며 자라나겠지. 그러고는 금방 내 앞의 청년과 비슷한 나이가 되고 일을 시작할 터였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니 이 청년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이 일을 안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뻔히 보였다. 일용직 노동자 주제에 크게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권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생. 내 아들 같아서 그러는 거에요. 이런 쓸데없는 운동 하지 말고 가서 얌전히 공부나 해요. 내가 말하고 나서도 양심이 찔렸다. 평생을 책 한 번 본적 없는 나였거늘, 어딜 저런 학생에게 훈수를 둔단 말인가.
하지만 한번 시작한 순간 끝을 봐야했다. 그쪽 아버지는, 학생 이러시는거 알아요?

알면 좋은 소리는 안나오실걸. 밤새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돌아가봐요.
뭐 그리 얻을게 있다고 운동을 하는 건지 원.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 들었을 것이다. 난 등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청년이 내 어깨를 잡았다. 밤새 소란을 피운 점은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말하고 가겠습니다. 저희의 운동은, 스스로만을 위해서 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조금 더 나은 조국을 언젠가 생길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그런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나는 청년을 쳐다봤다. 그러나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청년은 등을 돌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집에 돌아와 땀으로 축축한 막대기를 대충 던져두곤 침대에 누웠다. 잠, 내일 출근을 위해 잠을 자야했다. 그러나 정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해 잠에 들지 못했다. 아직 쌩쌩한 내 정신은 침대에 몸을 뉜 채 방금의 말을 계속해서 되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