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무전을 보내요, 오버!
구미현일고등학교 2학년 심채은
볼일을 보고 3호선을 타기 위해 명덕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방학이 시작 되었지만 여전히 바쁘고 힘들다.
‘이 입시에서 언제 벗어날까, 성적은 어떻게 올릴까, 방학 때 친구들과 언제 놀러갈까? 대프리카의 더위는 여전하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고개를 돌리니 명덕초등학교가 보였다. 초등학교 시절이 제일 좋았지 하면서 무심코 보는데 2·28민주운동기념관으로 가는 팻말이 학교 앞에 있었다.
‘어? 2·28기념공원은 시내에 있는데 저기는 뭐지?’
호기심에 멈춰섰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일만큼 햇볕이 따가웠지만 뭔가에 이끌려 이정표를 향해 걸어갔다.
‘2·28이니까 3.1운동 전에 일어난 운동이였지? 일제 강점기 기념회인가?’ 라고 생각하며 건물에 들어섰다.
오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 안내데스크에 있는 책자를 집어 들고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흑백사진과 함께 설명문을 하나씩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오마이갓!
2·28기념공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몇 번의 행사도 보았지만 2·28 민주화운동이 무엇인지 몰랐다.
심지어 일제 감정기 시대의 운동인 줄 알았다. 3.1운동전에 일어난 만세
운동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방 후 12년간 독재한 이승만 정권을 잡았고 1960년 이승만의 유일한 대항마 조병욱이 선거 한 달 전 갑자기 사망했다고 한다. 헐.
86세 이승만 대통령 당선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자유당은 나이 많은 대통령의 유고 시 권력 승계자인 부통령에 기붕을 당선시키고자 했으나 현직 부통령인 장면의 존재감이 크니 부담이 되었다.
1956년 장면의 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대구에서 1960년 2월 28일 장면의 수성 천변 유세가 예정되었는데, 이 유세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일요일 등교를 지시 내렸다고 한다.
이에 분개한 대구 8개고 공립학교(경북고, 경북 사대부고, 경북여고, 대구고, 대구 농고, 대구공고, 대구여고, 대구상고) 학생들이 이에 저항하여 연합 궐기 대회를 열었다.
이후 마산을 거쳐 서울로 확산되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4.19 혁명의 단초가 된 것이다.
부끄러웠다.
우리 지역에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었는지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 부끄러운 것은 고2인 나는 당장 나의 입시와 성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랑스러웠다.
이런 역사적인 일을 우리 대구에서 시작했고 그 주체가 고등학생이라는 것이었다.
부끄러움은 접어두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그날 일기에 2·28민주화운동에 대해 썼다. 그리고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2·28민주화운동 기념회관에 대해 들려주었다. 큰 규모의 전시관은 아니지만 그 내용을 보는 내내 나의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어쩌면 내가 고민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벅찬 기분에 3호선 밖 보이는 도시 대구의 모습이 더 정겹게 느껴졌다.
“괜찮다. 뿌리만 살아있다면 바람에 흔들려도 괜찮다.”
어딘가에서 본 글귀가 떠올랐다.
뿌리 깊은 대구에 사는 나는 지금 바람을 맞고 있더라도 괜찮아 질 것이다.
60년이 훌쩍 지난 그 당시 고등학생들과 무전이 된다면 고맙고 대단하다고 우리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노라고 들려주고 싶다. 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