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2월 25일

부모님이 곧 있을 대통령 선거와 부통령 선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셨다. 이번에도 부정 선거로 대통령이 바뀌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한숨을 쉬시며 이승만의 독재에 관해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했지만 부모님은 내가 듣고 있는 것을 눈치 채셨는지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하셨다. 그날 부모님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진 못했다. 하지만 이승만의 독재 정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1960년 2월 27일

갑자기 학교에서 일요일인 내일 등교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일요일에 학교에 등교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내 친구는 학교가 일요일에 등교하라고 말하는 이유가 장면 박사의 선거 유세장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승만의 독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승만은 부정 선거를 해 계속 대통령이 되려 하였고 나는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다른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의 학생회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일요 등교방침을 철회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저녁에 경북고 이대우 학생부위원장의 집에 경북고, 대구고, 경북대사대부속고 등의 학생회 임원들이 모여 부당한 일요 등교에 항의하기 위한 시위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상호 연락망을 구축하고 결의문도 작성하였다.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1960년 2월 28일

낮 12시 55분, 경북고 학생부위원장 이대우가 학교 조회단에 올랐다. 내리쬐는 햇빛이 우리를 더욱 집중적으로 비춰주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걱정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이대우를 비롯한 몇몇의 학생들이 전날 작성한 결의문을 낭독했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학생들은 그 말에 환호하였고 휘파람을 ‘휘익’ 부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회 대표들의 결의문 낭독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했고 학생들은 어깨 동무를 하거나 손을 잡으며 본격적인 시위를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놀라 학생들을 막으려 했지만 우리는 교문 밖으로 당당히 나왔다. 나는 내 옆에 있었던 한 학생을 아직도 기억한다. 결의문을 낭독하고 학교를 뛰쳐나와 시위를 시작했을 때 내 옆에서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행진했던 남학생이다. 생각보다 어려 보였지만 그 남학생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행진하고 외쳤다. 경찰과 선생님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았다. 그러다 경찰이 그 남학생에게 돌멩이를 던졌는데 ‘타악!’ 소리와 함께 그 남자아이의 머리에 맞았다.
“으악!”
남자아이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머리에 피도 났다. 하지만 나는 도와줄 수가 없었다. 내가 도와줬다간 나도 돌멩이를 맞아서 머리에 피가 날까봐, 나 하나 때문에 혹시 모두의 동선이 꼬여 버릴까 봐. 학생들은 계속해서 행진했고 동네 주민들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혓바닥도 차는 것 같기도 했고 잘하고 있다 응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잠깐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던 그 때, ‘탕! 타당! 탕!’ 경찰이 총 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총소리가 난 곳을 보니 내 친구가 쓰러져 있었다. 이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눈물을 흘리는 것과 피를 흘린 채로 쓰러져 있는 친구를 보고 있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지금 여기서 시위를 그만두면, 우리 학우들을 죽인 경찰에게 진 것과 같다! 그러니 같이 끝까지 시위하자!” 난 그 말을 듣고 계속, 끝까지 행진하였다.


1960년 4월 27일

얼마가 지났을까?.. 시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두 달 정도가 지난 오늘. 이승만이 독재정치를 멈추고 대통령을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의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이 일기에 다 적을 수 없을 것 같다. 경찰의 총 앞에 맞서며 했던 그 시위가 결국 성공한 것이다. 우리의 시위 이후 마산, 대전, 부산, 서울 등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고 한다.
시위에서 죽고 다친 학생들을 생각하면 기뻐하기는 미안하다. 그래서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 마치 모든 기분이 다 섞인 것 같다.
어느새 내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친구를 잃어 슬퍼서 우는 건지, 이승만이 대통령에서 물러나 기뻐서 우는 건지 모를 눈물이 가득한 날이었다.


1960년 4월 28일

난 아직 2월 28일에 했던, 민주화를 위해 했던 그 시위를 잊을 수가 없다. 그 날의 엄숙했던 분위기, 그 날에 우리를 비춰주던 햇빛, 그리고 내 옆에 있었던 학우들까지...
우리가 했던 그 시위, 정당한 이유를 대고 맞섰던 그 시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학교를 박차고 나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시위의 정신이 우리 모두에게 퍼져 나가 민주화의 불씨가 점점 크게 타오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