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대상
1960년 2월 28일
대구 경동초등학교 6학년 유세진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대구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뭐가 생각날까? 이월드, 팔공산, 동성로 정도 밖에 생각이 안날수도 있다. 하지만, 대구 시민이라면 우리 머릿속에 한 가지가 더 생각나야한다. 그건 바로 2·28 민주화 운동이다.
2·28 민주화 운동은 대구에 살고 있다면 자부심을 가져도 될 정도로 큰 운동이었고 우리 역사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민주화 운동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처음 시작되
었다.
내가 처음으로 2·28 민주화 운동을 알게 된 건 2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4학년 때 사회시간이었다.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난 우리나라 사람들 간의 갈등이었기에 일제강점기를 배웠을 때 느낀 감정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으로 인하여 많은 고생을 하고 자유 또한 통제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잔혹한 일본이 조선인들의 만세 소리는 무서웠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은 우리나라의 만세 운동과 비슷한 영향을 끼친 것 같
다. 내가 느낀 감정은 달랐으나 적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고 기분이 참 묘했다. 이 운동이 나라 안의 문제여서 공개하고 싶지 않고, 별로 오래된 역사도 아니어서 숨길수도 있었지만 이것이 사회책에 실려 다행이고 또 다행
이다. 이렇게 대구에서 일어난 작은 불씨가 2000년도에는 모든 지역의 아이들이 함께 보는 책 안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성냥으로 피운 작은 불씨, 후하고 불면 꺼질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하지만, 작은 불씨가 하나 둘 모이면 어느새 누구도 말리지 못할 만큼 큰 불이 일어나게 된다. 2월 28일 일어난 큰 움직임은 긍정적인 영향을 선물해주었다. 2·28
민주화 운동의 불씨는 정부의 옳지 못한 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서로 서로 작전을 짜고 조심히 행동을 하였다. 나는 말을 듣기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고 ‘우리가 그걸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민주화 운동은 어른들이 아닌 나보다 고작 4,5살 정도 밖에 많지 않았던 고등학생들이 이루어 낸 엄청난 노력의 결과이다. 지금은 일흔 여든도 넘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되
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10대의 어린 고등학생이었고 그러한 일들을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고등학생들은 야당이 유세하기로 예정된 일요일에 자신들을 강제로 등교시킴으로서 선거를 방해하려는 것을 알고 그에 맞
서 일어났다. 나라면 그저 편안한 주말에 등교를 강요하는 것이 귀찮고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고등학교 학생들은 나와는 다른 이유로 분노한 듯하다. 그들이 목숨까지 내어놓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시위를 한
건 존경스러움 그 이상이다.
나는 지금껏 사회주의인 우리나라를 상상 해 본 적이 없고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4학년 때의 사회 수업과 3일전에 본 영상 자료는 나의 생각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나의 생각을 뿌리 채 바꾼 자
료는 몇 달 전 미얀마 시위에 관한 영상이다. 미얀마의 현재 상황은 예전 우리 역사와 유사하다. 미얀마는 우리나라보다 조금 늦은 2021년도에 이러한 일들을 겪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까지 나오고 있
다. 나는 미얀마가 자신들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들이 우리처럼 민주주의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 1960년대는 SNS도 없었을텐데 이러한 악조건들을 이겨낸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새삼 힘들게 되찾은 민주주의를 잘 간직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이 없다면 가질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 정부가 어린 나이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조
금 더 많이 제공해주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나는 학교에서 각 반의 학급임원과 토론, 토의를 통해 학교의 작은 규칙을 결정하고 건의도 하였다. 대부분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었고 다수결의 원칙으로 조금 더 질서 있는 학교를
만들려는 규칙도 정해졌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 생각하고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짧았지만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 학교는 몇 달간 복도에서 안전한 생활을 하고 코로나 확산을 막자는 규칙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다. 이처럼 내가 지지하였던 의견이 공평한 원칙 속에서 적극 반영되어 학교의 일원으로서 조금 더 만족감을 느꼈다. 나는 대구가 자랑스럽고 6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참여하고 지지한 고등학생 한 분 한 분께 감사드
린다. 그들 덕분에 더욱 성장한 대한민국에 나와 우리 가족이 살고 있어서 또 감사하다.
내가 어른이 되어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았을 때 떳떳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 것이다.
그리고 존경받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