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_META_TITLE_ 휴관일입니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횃불 2·28 민주운동

2019년

제59주년 2·28 민주운동 기념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민주화운동 유공자와 가족 여러분,
대구 시민, 경북 도민 여러분,
자랑스러운 대구 2·28 민주운동 59주년입니다.
먼저 2‧28 민주운동으로
우리나라 민주화의 물꼬를 트신
유공자와 가족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날의 뜻을 지키며 훗날에 전해주시는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우동기 회장님과
회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2‧28 참여학교 학생과 선생님 여러분, 반갑습니다.
1960년 오늘,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 연장을 위한
부정선거 획책에 맞서 일어섰습니다.
일요일이었던 그날
수성 천변에서 열릴 야당의 유세를 방해하려고
당국은 학생들의 등교를 지시했습니다.
그에 항의하는 대구의 8개 고등학교 1천7백여 학생들이
결의문을 지어 발표하고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시민들은 박수로 호응하며 동참하셨습니다.
그것은 ‘대구정신’의 당당한 표현이었습니다.
예로부터 대구는 정의와 애국의 고장입니다.
일제가 한반도 지배의 야욕을 드러낸
1907년부터 1908년에 걸쳐
남자들은 술, 담배를 참고
여성들은 금붙이를 내놓으며 국채보상운동을 벌여
항일운동을 시작한 곳이 바로 대구였습니다.
일제가 우리 강토를 유린하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하고 통한을 절규하신
이상화 시인도 대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이
대구·경북입니다.
그런 ‘대구정신’이 2·28로 표출됐습니다.
대구의 2·28 거사는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3월 8일에는 대전에서, 3월 15일에는 마산에서
의거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4‧19혁명으로 장엄하게 불타올랐습니다.
4‧19 일주일 뒤인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습니다.
그렇게 독재정권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청년 학생들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싹틔웠습니다.
그것이 1980년의 5·18, 1987년의 6월 항쟁과
2016년, 2017년의 촛불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자랑스러운 역사가 바로 2‧28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자랑스러운 주역이 바로 대구의 학생과 시민 여러분이었습니다.
여러분, 존경합니다.
그러나 2‧28 민주운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많이 늦어졌습니다.
의거에서 58년이나 흐른 작년에야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정부는 2‧28을 포함한
모든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승화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특히 2‧28부터 4‧19에 이르는
일련의 민주화운동 6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유공자를 훨씬 더 많이 찾아 인정해 드리는 등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구 시민 여러분,
이 자리에는 권영진 대구시장님과 배지숙 의장님,
이철우 경북지사님과 장경식 의장님은 물론,
광주의 이용섭 시장님, 김동찬 의장님과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 참석하셨습니다.
광주의 고등학생들도
1929년 항일독립운동을 벌여 전국으로 확산시켰습니다.
1980년 5월에는 수많은 광주시민이 희생되면서도
신군부의 헌정파괴에 맞서 싸웠습니다.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는
대구의 시장님과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동참하십니다.
달구벌 대구와 빛고을 광주가 맺은
‘달빛동맹’의 아름다운 동행에 박수를 보냅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습니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남북한은 서로 죽이고 의심하며
증오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는 화해하고 협력하며
함께 번영하는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부는 지혜와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평화와 번영의 길을 열어가겠습니다.
독립과 민주화의 길을 함께 열었던 대구와 광주가
이제 평화와 번영의 길도 함께 가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가십시다. 감사합니다.
2019년 2월 28일
국무총리 이 낙 연

2·28이 들려주는 이야기

2·28기념회관에 가면 저렇게 오른손에 횃불을 들고 있는 상징이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 보셨나요?
네, 대구·경북의 학생들이라면 한 번 쯤은 봤을 법한 조형물이지요.
횃불은 어둠을 비추고 세상을 밝게 합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보시다 시피 오른 손에 횃불을 높이 들고 있습니다.
오른 손에 횃불을 든 것은 자유를 표현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저 맹렬한 불길은 지칠 줄 모르고 끝까지 도전하는 우리 인간의 삶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대구·경북에는 언제나 불을 밝히고 있는 2개의 횃불이 있습니다.
하나는 국채보상운동으로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킨 독립의 횃불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2·28민주운동으로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민주의 횃불입니다.
대구·경북의 학생 여러분이 대한민국 민주의 새 길을 밝히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오른 손에 횃불을 높이 들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1907년 2월 21일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국채보상운동 대구 군민 대회가 열립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기 위한 차관 1,300만원, 당시 우리나라 한해 살림에 맞먹는 금액을 갚기 위해 남자들은 담배를 끊고 여자들은 패물을 내놓아 그 돈을 모아 국채를 갚자는 독립정신, 우리나라 최초의 항일운동 대구·경북에서 처음 시작합니다.
또 하나의 횃불이 타올랐습니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운동 2·28민주운동의 횃불이 대전을 거쳐 마산. 그리고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졌고 마침내 4월 19일 4월 혁명으로 완성하게 된 것도 대구·경북의 선비정신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거짓에는 제 목소리를 내는 대구·경북정신, 옳은 일에 앞장서고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는 대구·경북의 시민정신이 대한민국 민주의 정신이며 뿌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청년, 학생 여러분!
불의에 눈감지 않고!
부당에 타협하지 않으며!
오른손에 횃불을 높이 들고 옳은 일에 앞장서는 정정당당!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뿌리, 2·28정신입니다.
여러분! 어떠세요?
횃불이 이젠 달리 보이지 않습니까?
대구·경북은 언제나 시작이었고 처음이었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독립정신이고 대한민국의 민주정신이며 지금 이 순간도 횃불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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