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동상(산문)
당신은 그들을 기억하나요?
대구상원고등학교 2학년 4반 이신비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치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이 문장이 누구의 것인지 아는가? 바로 2‧28 민주운동에서의 한 대구 고등학생의 결의문이다. 당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이기붕 대통령 부통령 당선과 그로 인한 자신들의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선거 한 달 전,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급서해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은 확실했지만, 부통령의 야당 후보인 장면 때문에 이기붕이 당선될지는 미지수였다. 이때 장면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대구에서의 그의 유세는 자유당에게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자유당 정권은 터무니없는 핑계로 일요일인 그날 고등학교에 등교 지시를 내렸다. 이에 학생들은 학교에 일요등교 철회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들은 모여 결의문을 정독하고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체포되고 교사들도 추궁을 받았지만,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학생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훗날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일찍 고등학생들이 활약한 적이 있다. 바로 1942년, 일제강점기 때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상호 학생이 주동하여 민족차별과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민족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태극단을 결성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 조직적인 행동강령을 만들고 항일투쟁을 준비하다가 안타깝게도 체포되어 고문과 옥살이를 당하였다. 최근에 들어서야 민족사적 의의가 드러나는 이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학교 총동창회에서는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을 세워 그들을 기념했다. 나이가 어린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 선뜻 나선 학생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 나는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2‧28 민주운동은 워낙에 유명하여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희생이 이루어졌던 것은 잘 모르고 있었다.

1942년, 학생들과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더 오랫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1960년, 2‧28 민족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4‧19혁명이 용기를 얻어 일어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배경에는 이들이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한때 그들처럼, 잘못하면 고문을 받을까 두려움에 떨지 않고 마음껏 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즐겁게 학교에 등교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과거 학생들의 행동과 희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아가 현재까지 독재 정치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과거의 우리 학교와 다른 대구 지역 학교 학생들이 막아낸 것이 놀랍고 기쁠 뿐이다. 나는 이 학생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재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고, 훗날 미래의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학생이 될 수 있도록 민주 시민으로서 노력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글로 써내려가는 작가가 되어 나의 작은 삶이 나와 우리나라에 큰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는 것도 나에게는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국민들도 과거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